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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주말 "만나자" 카톡…여직원 수치심 느끼면 성희롱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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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6면

법무부 소속 6급 공무원 양모(49)씨는 지난해 공무원의 품위유지 의무를 위반했다는 이유로 법무부에서 정직 1개월의 징계처분을 받았다. 함께 근무하는 여직원 7명에게 카카오톡이나 문자메시지를 통해 ‘언제 영화나 같이 보러 가자’ ‘보고파’ ‘데이트 한번 해야지’ 등의 메시지를 여러 번 보낸 게 문제가 됐다. 양씨는 밤에 여러 차례 전화를 걸어 신호가 서너 번 울리면 끊기도 한 것으로 조사됐다. 그는 “동료로서 친밀감을 표시한 것일 뿐이었고 신체적인 접촉도 없었는데 징계를 한 건 가혹하다”며 소송을 제기했다.

 법원은 양씨의 행위를 성희롱이라고 판단했다. 서울행정법원 행정14부(부장 진창수)는 양씨가 법무부를 상대로 낸 정직처분 취소소송에서 원고패소 판결했다고 22일 밝혔다. 재판부는 “양씨는 근무시간이 아닌 야간이나 주말을 이용해 사적 만남을 강요하는 메시지를 반복적으로 보냈다”며 “일반적이고 평균적인 사람에게 성적 굴욕감이나 혐오감을 느낄 수 있게 한 행위로 징계사유가 된다”고 밝혔다.

 양씨 사례에서 보듯 법원은 사회통념상 성적 굴욕감이나 수치심을 자극했는지를 성희롱 사건의 유·무죄 판단 시 주요 기준으로 삼는다.

 가해자가 성적 의도가 없었다고 주장해도 일반인의 관점에서 ‘객관적으로 성적 수치심을 유발하는 행위’라고 판단되면 성희롱으로 인정하는 추세다. 법무법인 조율의 안영주 변호사는 “성희롱과 관련한 법 규정은 범위가 넓고 행위별로 명확하게 정해져 있지 않다”며 “과거에 비해 법원이 성희롱으로 인정하는 영역이 점차 넓어지는 경향이 있다”고 설명했다.

 대기업 계열 보험사의 지점장이었던 정모(52)씨는 2004년 회사로부터 해고통지를 받았다. 여직원에게 토요일 저녁에 전화해 “집이 비어 있는데 놀러 오라”고 요구하고 성과가 좋다고 칭찬하는 과정에서 “열심히 했어. 뽀뽀”라고 말하며 여직원에게 얼굴을 들이대는 등의 행위를 했다는 이유였다. 서울고법 행정8부는 2009년 3월 정씨가 제기한 부당해고 구제 재심판정 취소소송에서 원고패소 판결했다. 재판부는 “행위의 내용이나 정도가 사회통념상 일상생활에서 허용되는 단순한 농담이나 친밀감 있는 행동의 범위를 넘어섰으므로 성희롱에 해당한다”고 밝혔다.

  법무법인 세한의 최기영 변호사는 “성희롱이 사회문제화된 기간이 아직 짧기 때문에 법원에서도 충분한 판례가 축적되지 않았다”며 “애매한 사건의 경우 재판부별로 판단이 엇갈리는 경우도 있다”고 했다.

 성추행에서도 법원의 판단은 유사하다. 80대 노인이 여학생의 겨드랑이에 손을 집어 넣은 혐의(강제추행)로 기소된 사건에서 서울중앙지법은 21일 “객관적으로 볼 때 성적 수치심을 유발하는 행위”라며 벌금 250만원을 선고했다.

박민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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