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일」벗으려나 암흑20년|전「체코」수상 사인재조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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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4면

동구에서 일고있는「자유화의 물결」은 지난3월「체코슬로바키아」의 악명 높은 공산독재자「안토닌·노보트니」를 대통령의 자리에서 좇아냈다.
그리고 지난 20년간의 암흑정치 하에서 저지른 여러 가지 큰 죄상이 하나씩 밝혀지기 시작했는데 그중에서도「체코」국민들의 가장 큰 관심을 모으고 있는 것이 20년전의 「얀·마사리크」외상의 변사사건.「체코」정부당국도 비등하고있는 국민여론을 받아들여 재조사를 위한 특별위원회를 신설, 진상규명에 나서고있는데 이사건의 안팎을 더듬어 보면….

<비공산당의 각료>
사건은 1948년3월10일 외무성 앞뜰에 잠옷 바람으로 된「마사리크」외상의 변시체를 「보일런·맨」이 발견했다.
「체코」건국의 원조로 추앙 받고있는「토머스·마사리크」전대통령의 아들이며 사상 유일한 비공산당원 각료였다. 그는 평소 외무성 건물 안에서 기거하고 있었는데 당시 현장검증에 나선 수사관과 공의는 욕실 옆에 붙은 침실에는 싸웠던 흔적이 있었고, 「마사리크」 외상의 몸과「파자마」및 욕실의 창문에까지 배출물이 묻어 있었고 자살하려는 혼적이 없다는 사실을 밝혀냈지만 검시보고를 사실대로 공표하지 못했을 뿐만 아니라 사건 수사도 불과 며칠만에 종결되고 정부당국은『「노이로제」에 의한 투신자살』이라고 공식 발표한 것.

<소정보원 손쓴듯>
이렇게 되자 「체코」국민들은『「마사리크」외상은 소련첩보기관원의 손에 맞아 죽은것』이라는 짙은 의혹을 갖게됐고 더구나「체코」공산당은 독재정치를 더 강화, 끝내는 1952년의「피의 숙청」을 자행했다.
이번 재조사로 지난달「노보트니」의 해임과 더불어 언론의 자유를 얻게된「체코」국민들이 그 진상을 해명하라고 정부롤 공박한 것이 주효한 것인데 지난4월2일 검찰총장 앞으로 낸「칼르커스」대학「스비타크」교수의 재심청구서는 다음과 같은 점을 해명하도록 요구했다.

<주치의접근 불허>
①침실의 재떨이에는 여러 가지의 담배꽁초 14개가 있었다. ②「마사리크」의상의 주치의는 유해를 못보게 했다.③검찰 소견서에는「하에크」교수의 서명이 적혀있었으나 그 교수는 나중에「사인」은 강제로 찍혀진 것이며 시체로부터 3미터 내로 접근할 수 없었다고 고백한점.④사건당시의「노세크」내상은 장례식후 곧 수사종결령을 내린점. ⑤시체 입관자의 말로는「마사리크」외상의 우측 귀 뒤쪽에 주사자국이 있었다.
사건발생 후 시간의 흐름과 함께 유력한 증인, 검시의, 조사관 등등 사건조사에 관여했던 사람들은 납득할 수 없는 교통사고나 자살 또는 투옥되어 죽어갔다.

<증인들 모두 죽어>
이런 상황 하에서 20년전의「마사리크」외상의 변사사건해결이란 쉽사리 이루어 질 것 같지는 않다는 것이 공통된 견해.
그러나 재조사의 본뜻은 지난 20년동안 공산독재에 시달려온「체코」국민들의 암흑 탄압정치에의 반발과 다시는「데모크라시」를 잃지 않겠다는 결의의 표현인 것으로 해석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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