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에서] DJ가 21년 전 참배한 그곳 … 민주당은 아직도 외면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04면

전병헌 민주당 원내대표(왼쪽)가 21일 오후 경남 김해 봉하마을에서 노무현 전 대통령 묘역을 참배하고 있다. 전 원내대표는 이날 오전 방문한 서울 동작동 국립현충원에선 김대중 전 대통령 묘역을 참배했지만 이승만·박정희 전 대통령 묘역은 찾지 않았다. [뉴시스]
채병건
정치부문 기자

전병헌 민주당 원내대표 등 민주당 원내 지도부가 21일 오전 서울 동작동 국립현충원을 찾았다. 이들은 현충원에서 분향하고 김대중(DJ) 전 대통령의 묘역에 참배했다. 오후엔 김해 봉하마을로 내려가 노무현 전 대통령의 묘역도 참배했다. 역시 이승만·박정희 전 대통령 묘역은 건너뛰었다. 지난해 9월 민주당의 문재인 대선 후보, 얼마 전 선출된 김한길 대표가 그랬던 것과 마찬가지였다.

 전 원내대표는 “현충원에서 호국영령에 참배할 때의 대상엔 이곳에 묻힌 이승만·박정희 전 대통령 두 분도 포함돼 있다”며 “방명록에 ‘호국영령의 뜻을 받들어 좋은 정치로 국민께 헌신하겠다’고 적은 것도 같은 취지”라고 설명했다.

 그는 DJ 묘역을 따로 찾은 이유에 대해선 “DJ에게서 정치를 배운 인연이 있는 만큼 정치적인 제자로서 간 것”이라고도 했다.

 하지만 여론이 이런 설명을 납득할지는 의문이다. 어떻든 ‘선별적 참배’를 한 건 사실이기 때문이다.

 민주당의 선별적 참배는 강성 지지층의 반발을 견뎌낼 배짱이 없기 때문이 아니냐는 지적이 많다. 민주당 지지층은 지금 양분돼 있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이 중 강성그룹이 문제다. 김한길 대표는 지난 19일 서울시청 광장에서 열린 노무현 전 대통령 추모제를 찾았다가 친노임을 자처하는 지지자로부터 멱살이 잡히는 봉변을 당했다. 날아온 과자 봉지를 얻어맞고 10분 만에 행사장을 떠나는 수모를 겪었다.

 그러니 원내 지도부로선 이승만·박정희 두 전직 대통령을 찾았다가 지지층 내부에서 비판을 받기보다는 그간 당 지도부가 해온 대로 DJ 묘역만을 찾은 것일 수 있다. 그렇다면 정치적 용기 부족이다.

 이날 민주당 지도부가 가지 않았던 이승만·박정희 전 대통령 묘역을 DJ는 21년 전인 1992년 12월 13일 참배했었다.

 DJ는 당시 두 전직 대통령의 묘역을 참배한 뒤 “오랜 숙제를 마친 것 같다. 두 분이 남긴 공적만 생각하자. 역사의 평가에 맡기자”고 지지층을 달랬다. 그는 대통령이 된 뒤엔 박정희대통령기념사업회에 재정 지원을 약속해 기념관 건립의 산파 역할도 했다. DJ는 기념사업회 명예회장을 직접 맡았다. 지난해 2월 박정희 기념관 개관식에서 박근혜 당시 새누리당 비상대책위원장이 “기념관은 김대중 전 대통령이 제안했고 국민의 정성이 모여 완성됐다”고 밝혔던 이유다.

 민주당은 불과 5일 전인 지난 16일 야권의 심장인 광주를 찾아 “민주당의 영혼이 깃든 이곳 광주에서 ‘새로운 민주당’의 출발을 다짐한다”고 선언했다. 그렇게 발표한 ‘광주선언’엔 “정치권이 정파·정당의 이익을 위해 싸움만 한다는 비판에서 우리가 자유롭지 못하다는 사실을 인정하며, 상대를 인정하지 않는 분열주의·계파주의 정치와 결별하겠다”는 약속을 담았다. 네편과 내편으로 나누는 이분법적 사고에서 벗어나겠다는 얘기였다. 그렇다면 말뿐이 아니라 행동으로도 보여줘야 한다. 이날 민주당 원내지도부는 DJ 묘역만을 참배하면서도 정작 DJ가 발휘한 정치적 포용력은 보여주지 못했다.

채병건 정치부문 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