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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88억 배상 지연이자 독식하려다 소송 걸린 변호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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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4면

소송 1건을 이기고 수임료와 성공보수로 365억원을 받은 변호사가 있었다. 대구시 동구 공군비행장(K-2) 소음 피해 주민들의 손해배상 소송 담당 최모(47) 변호사다. 동구 주민 2만6700여 명은 2011년 9월 전투기 소음에 따른 손해배상 청구소송에서 승소했다. 최 변호사는 성공보수 77억원과 지연이자(손해배상금 지급이 늦어질 경우 붙는 이자) 288억원 등 365억원을 가져갔다. 그러나 주민들은 “지연이자를 변호사에게 주기로 약정하지 않았다”며 소송을 제기했다.

 이에 대해 재판부는 “지연이자의 절반인 144억원을 주민들에게 반환해야 한다”는 판결을 내렸다. 대구지법 제15민사부(부장판사 황영수)는 21일 “국가배상금 지연이자 288억원 전액을 가져가기로 했다는 약정은 유효하지 않다”고 판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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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재판부는 “지연이자가 원·피고 모두 예상하지 못할 만큼 큰 액수이고, 피고가 안내문을 통해 주민들에게 지연이자의 50% 반환의사를 밝힌 점 등을 고려할 때 지연이자 전액을 성공보수로 취득하는 것은 형평의 원칙에 어긋난다”고 밝혔다.

 이 판결이 확정되면 소송 참가자는 소음 피해 정도에 따라 70만~100만원을 최 변호사로부터 받게 된다. 소송에는 주민 1만1000여 명이 참여했다. 주민들은 컴퓨터 전산입력 문제로 6차례로 나눠 동일한 내용의 소송을 제기했었다. 이날 판결은 가장 먼저 소송을 낸 주민 4628명에 대한 선고였다.

 소음 피해 소송은 2004년 시작됐다. 대구시 동구에는 제11전투비행단·군수사령부·남부전투군사령부가 들어선 K-2 공군기지가 있다. 부대 인근 주민 18만여 명은 하루에도 두 차례 이상 이착륙하는 전투기 소음에 시달렸다. 주민들은 그해 8월 최 변호사를 선임해 국가를 상대로 아홉 차례로 나눠 소음 피해 소송을 제기했다. 대법원은 2011년 5월 마주 앉아 대화하기 힘든 정도의 소음인 85웨클(WECPNL·항공기 소음측정 단위)을 넘는 곳의 주민 2만6700여 명에게 799억6000만원을 지급하라고 판결했다. 배상금 511억4000만원과 지연이자 288억2000만원을 합한 금액이었다. 지연이자는 7년간 재판 과정 중 발생한 배상금 원금에서 계산한 것이다.

 문제는 최 변호사가 지연이자까지 자신의 것이라고 주장하면서 불거졌다. 최 변호사는 “소송 전에 당시 주민 대표 80여 명과 성공보수를 판결원금의 15%로 하고 지연이자를 변호사 몫으로 한다고 합의했다”고 주장했다. 반면 주민들은 “변호사 성공보수에 지연이자가 포함된다는 것을 설명하지 않았다”고 말했다. 주민들은 최 변호사가 대법원에서 승소할 게 확실해지자 주민들에게 안내문을 보내면서 지연이자를 거론했다고 주장했다. 이날 판결에 대해 최 변호사는 “주민들이 항소하지 않으면 지연이자의 50%에 해당하는 돈을 주민들에게 나눠주겠다”고 말했다. 그러나 주민들은 “항소하겠다”는 입장이다.

 이번 소송으로 변호사의 성공보수에 대한 논란이 재연될 조짐이다. 성공보수는 의뢰인이 승소했을 경우 변호사에게 인센티브 형식으로 주는 돈이다. 보통 승소해서 받은 금액의 일정 비율로 정한다. 하지만 이 비율을 어떻게 정할지에 대한 기준이 없다.

 한 손해배상 전문 변호사는 “최 변호사가 소송기간이 길어질 줄 몰랐던 데다 착수금 없이 소송비용을 직접 부담하면서 성공보수를 많이 받는 쪽으로 약정을 고안해 냈고 주민들이 충분한 검토 없이 이를 받아들인 것 같다”고 말했다.

대구=김윤호 기자, 이동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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