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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식 5%룰 강화는 경제민족주의" FT, 한국 금융정책 비판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경제 02면

영국의 파이낸셜 타임스(FT)가 한국 정부의 금융 정책을 강도높게 비판했다.

FT는 31일 '서울의 새로운 규제가 해외 투자자들을 분노하게 한다'는 제목의 1면 머리기사와 3면 해설, 사설 등을 통해 "5% 룰의 강화 등 한국 금융 당국의 규제책을 해외 투자자들은 '정신분열적 태도'로 평가한다"고 보도했다. FT는 "이 같은 '경제적 민족주의'는 결국 한국의 미래를 위협할 것"이라고 썼다. 비판의 대상이 된 '5% 룰의 강화'는 경영 참가를 목적으로 특정 기업의 주식을 5% 이상 취득할 경우 누가, 어떻게 마련한 자금으로 주식을 사들였는지 자세히 공시하도록 한 내용이다.

FT는 "이런 한국의 정책은 외국 자본의 유치에 치명적"이라며 "이렇기 때문에 한국에서 사업을 해 본 외국인들은 한국이 동북아시아의 금융허브가 되겠다는 구상에 대해 웃어넘기거나, 위선적이라고 생각한다"고 꼬집었다.

이에 대해 국내외 금융 전문가들은 "FT답지 않은 편파적인 보도"라는 반응을 보이고 있다. 이화여대 이지환 경영학부 교수는 "5% 룰의 강화는 외국인 투자자는 물론 국내 모든 투자자들에게 똑같이 적용되는 것으로 '글로벌 스탠더드'에도 부합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그동안 국내 기업의 적대적 인수.합병(M&A) 때 공격자들은 자신의 정체를 숨긴 숲 속의 저격자가 될 수 있었지만 공격받는 기업은 허허벌판에 홀로 노출되는 불공정한 상황이었는데 이를 공정한 게임으로 정상화시킨 것일 따름이란 설명이다.

미국 폴 앤드 와이즈 법무법인의 앨릭스 오 변호사는 "미국에서도 M&A를 시도하는 쪽이 5% 룰에 따라 시장에 공시할 내용은 책 한 권 분량 정도로 방대하다"고 전했다. SK경영경제연구소 왕윤종 상무는 "일본은 최근 M&A를 하려면 해당 기업 이사회의 동의를 받도록 하는 등 M&A를 사실상 차단하는 조치까지 검토하고 있다"면서 "FT가 이런 일은 비판하지 않고 한국만 들먹이는 것은 국내에 들어와 있는 영국계 투기자본의 잇속을 대변하기 위한 그들 나름의 '국수주의'를 드러낸 것"이라고 반박했다.

한편 재정경제부와 금융감독원은 FT 측에 반론문 게재를 요구하기로 했다.

김광기.이승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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