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최규선 녹음테이프 이렇게 입수했다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뉴스위크 한국판이 최규선씨의 최후진술 특종을 한 뒤 녹음 테이프 9개와 관련 자료를 입수하게 된 경위에 대해 언론계에서 관심이 이만저만 아니다. 많은 언론사들은 崔씨가 청와대쪽을 바라보며 ‘협박 半, 애원 半’식의 구명운동을 하다가 실패하자 보복적 차원에서 이 테이프들을 본지를 통해 공개한 것이라는 의혹을 갖고 있다. 또 어느 언론사는 이 테이프를 崔씨가 검찰 소환 직전 측근에게 넘겨주면서 “검찰이 나를 기소하면 그때 공개하라”고 부탁한 것이라는 해석까지 달아놓았다. 결국 崔씨의 작전에 의한 것이라는 말이다.

하지만 이런 말들은 그야말로 추론일 뿐 사실과는 거리가 멀다. 테이프 입수는 그야말로 우연한 말 한마디에서 시작됐기 때문이다.

4월 11일쯤이었던 것으로 기억이 난다. 한 후배로부터 약간은 호기심이 나는 질문을 듣게 된다. “선배, 저 최규선이라는 사람과 문화사업(자서전 작업을 이렇게 우회적으로 표현한 것이었다)같은 걸 하는데, 괜찮을까요.” 그때는 이미 崔씨의 비서 천호영씨가 경실련 홈페이지에 崔씨의 비리를 공개했고, 崔씨가 기자회견을 통해 김홍걸씨에게 돈을 줬다는 말을 한 뒤라 그야말로 崔씨의 말 한마디에 온 언론의 관심이 집중됐을 때였다. 그는 그 ‘문화사업’에 대해 더 이상 입을 열지 않았고, 난 내막도 모른 채 무조건 만류했다.

이‘문화사업’에 은근히 궁금증을 품고 지내던 중 그의 아내와 차를 함께 탈 일이 있었다. 그의 아내는 남편이 崔씨의 자서전 작업을 위해 녹취를 해왔는데, 崔씨가 검찰에 소환된 이후 崔씨 측근으로부터 검찰이 부를지 모르니 당분간 도피해 있으라는 말을 들었다며 몹시 고민스러운 표정으로 상의를 해왔다. 특종이 코앞으로 다가왔다는 직감으로 온몸의 신경이 곤두서기 시작했다. 흥분된 마음을 애써 가라앉히며 후배의 아내에게 어떻게 해서든 그를 만나게 해달라고 신신당부했다. 그 후배는 이미 서울을 떠나 도피 중이었다.

서울로 잠시 잠입한 그를 만난 건 4월 25일 저녁. 崔씨가 검찰 소환 직전 그에게 녹음 테이프와 모든 사진자료 등을 맡겨놓았다는 사실을 확인했다. 이 모든 것들을 넘겨받기 위해 최선을 다해 그를 설득하기 시작했다. 그는 崔씨의 자료를 당사자 동의없이 제공하는 부분 때문에 결심을 못했다. 그를 설득한 나의 논리는 다음과 같았다. “검찰이 제공하는 보도자료대로라면 崔씨는 희대의 사기꾼이다. 그에게도 분명한 功과 過가 있지 않겠느냐. 그걸 우리가 이 자료들을 근거로 밝혀주자”는 것이었다. 3일을 고심하던 후배는 결국 내 제안을 받아들였다. 물론 그 후배는 崔씨 측에는 아무런 상의를 하지 않았다. 상의하다가 자료조차 압수당할 가능성이 있다고 판단했기 때문이었다.

4월 29일 늦은 저녁, 빗길을 뚫고 후배의 일산 집으로 갔다. 그곳에서 테이프와 모든 자료를 받았다. 그 자료들을 하나하나 확인하는 순간순간은 놀라움뿐이었다. 자정을 지나서 집에 돌아오는 길에 빗줄기가 더 세차게 내리고 있었는데 그 비마저 정답게 느껴질 정도였다.

다음날 저녁 우리는 다시 만났다. 崔씨의 이종사촌형 이창현씨에게 4월 29일 오전에 넘겨준 육성녹음이 담긴 테이프 3개를 돌려받기 위해서였다. 李씨는 검찰로부터 崔씨 관련 테이프를 제출하라는 요구를 받고 있었고, 이에 대비해 후배에게 그 테이프 3개를 넘겨받아 검찰 제출용으로 한개짜리 테이프를 만든 뒤 이날 돌려주었다. 4월 30일 저녁, 모든 자료는 완벽하게 내 손안에 들어왔다. 李씨가 편집한 테이프에는 崔씨가 홍걸씨에게 남긴 협박용 메시지 등을 비롯해 몇몇 주요 내용들이 삭제녹음돼 있었는데, 그 테이프가 바로 C사가 중앙일보 기사를 무단전재한 후 이창현씨로부터 받은 그것이다.

그 다음날부터 외부와의 연락을 단절하기 위해 후배 부부의 휴대폰을 끄도록 했다. 우리 셋은 3일간 숙식을 함께 하며 녹음 테이프를 푸는 작업에 집중했다. 녹음 테이프를 바탕으로 기사를 완성한 후 편집을 할 때도 작업상의 보안을 위해 단말기에 띄우지 않고 디스켓으로만 작업했다. 이번 특종은 취재원과의 의기투합, 그리고 제작진의 치밀한 팀워크에 의해 완성된 것이다.

임도경 뉴스위크 취재팀장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