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n Sunday] 일본 정치인의 망언, 전략·전술 구분해야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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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23호 31면

하루가 멀다 하고 터져 나온다. 과거에 이런 적이 있었나 싶을 정도다. 일본 극우파들의 망언과 망동(妄動) 얘기다.

 13일 하시모토 도루(橋下徹) 일본유신회 공동대표가 일본의 침략 책임론을 부정하며 “전시에 위안부는 일본뿐 아니라, 다른 나라에도 있었다”고 말했다. 한국·중국은 물론 미국까지 강력하게 비난하자 18일 대표적인 극우 정치인 이시하라 신타로(石原愼太郞)가 하시모토를 비판하는 시늉을 하더니 “일본은 침략을 한 적이 없다”며 한술 더 떴다. 결국 지난달 23일 “침략의 정의는 확실한 게 없다”고 한 아베 신조(安倍晋三) 총리의 망언에서 하나도 바뀐 게 없다.

 이상한 ‘우연’도 잇따른다. 지난 5일 한 야구 행사에 아베는 ‘96’번 유니폼을 입고 나왔다. 개헌 발의 규정인 헌법 96조를 바꿔 평화헌법을 쉽게 개정하려는 의도가 엿보였다. 12일에는 항공자위대 기지에서 일제 만행의 상징 ‘731 부대’를 연상케 하는 731호기에 앉았다. 4월 28일 한 행사에서는 일왕을 앞에 두고 총리와 각료들이 ‘덴노헤이카 반자이(천황 폐하 만세)’라는 군국주의 구호를 외쳤다. 일본 정부는 ‘의도하지 않은 우연’이라고 되풀이한다. 이렇게 집요하게 반복되는 우연이 있을까.

 일본 우파의 행태는 전형적인 조폭식 영역 넓히기다. 예민한 이슈를 차례로 꺼내 상대의 반발 정도를 본 뒤 ‘어디까지 가능한지’를 재보겠다는 거다. ‘깨진 유리창’ 이론에 빗대면, 돌을 던져 유리창을 부수고는 이미 깨졌다며 망치 들고 나서는 셈이다. 문제는 이런 뻔한 수법이 효과를 본다는 점이다. 엄청난 이슈가 한꺼번에 쏟아지니, 예전에는 그냥 넘기지 않았을 사안들이 오히려 평이하게 느껴진다. 의원 한 사람만 가도 난리가 났던 야스쿠니 신사를 지난달 무려 168명의 현역 의원이 찾았지만, 며칠 만에 잠잠해진 게 그렇다.

 일본 우익의 심장부에서는 지금 ‘위안부·731부대는 예민, 침략 부인론은 계속 추진, 야스쿠니·개헌론은 OK’ 하며 자신들의 활동 영역을 셈하고 있을지도 모를 일이다. 7월 참의원 선거에서 이겨 개헌을 달성하겠다는 전략적 목표를 위해 어떤 전술도 마다하지 않을 기세다.

 하나 하나 분노가 치미는 일본 우파 정치인들의 망언을, 한 발 물러서 봐야 하는 건 그래서다. 저들이 던지는 망언마다 ‘100%의 분노’를 쏟는 것은 불가능하다. 그보다는 인류가 공유하는 인권·평화·자유의 가치에 집중해야 한다. 위안부 이슈에 대해 전 세계 언론이 들고 일어섰듯, 인류 근본 가치를 침해하려는 시도에 대해선 국제 연대와 외교 노력을 집중해야 한다. 시대착오적인 우경화 흐름에 아파하는 일본의 양심적인 시민·언론과도 함께해야 한다. 도쿄의 한인타운 신오쿠보(新大久保)를 어지럽히던 반한 우익 단체들의 증오 연설(Hate speech) 행진을 비판해 잠재웠던 게 바로 그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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