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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량채권 없어 못산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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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6면

올들어 채권의 품귀현상이 심화되고 있다. 발행물량은 줄었는데 찾는 이들은 크게 늘었기 때문이다.

우선 기업들은 올해 경기전망이 불투명하다고 보고 사업확장이나 설비투자 확대를 위한 회사채 발행을 생각하지 않고 있다.

또 지난해 상반기까지 금융채를 많이 발행했던 은행.카드회사도 지난해 하반기부터는 발행 규모를 축소했다.

반면에 주식시장이 침체를 벗어나지 못하는 가운데 예금 금리의 하향세가 지속되면서 마땅한 운용처를 찾지 못한 자금이 채권시장으로 계속 밀려들고 있다.

공급이 수요를 따라가지 못하면서 채권의 품귀현상이 빚어지고 있는 것이다.

◇채권이 모자란다=지난달 말 회사채 발행잔액은 1백64조원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2조원이 줄었다. 만기가 돼 기업이 갚은 회사채가 신규발행 물량보다 많았던 것이다. 특히 우량기업의 회사채는 아예 찾아보기 어렵다. 신세계 관계자는 "4천억원 정도 유보현금이 있고, 투자규모도 예년과 비슷해 올해 새로 회사채를 발행할 계획이 없다"고 말했다.

그러자 그동안 인수가 쉽지 않았던 BBB등급(투자적격 등급 중 가장 낮은 등급)의 채권에도 수요가 몰리고 있다. 이 바람에 신용등급이 좋지 않은 기업들은 자금조달의 숨통이 트였다.

금융채의 발행물량도 크게 줄어들 전망이다. 은행과 카드사 등이 발행한 금융채의 잔액은 지난달 말 현재 1백24조원으로 전년동기의 84조원에 비해 32%가 늘었다.

그러나 지난해 하반기부터 정부가 가계대출의 억제에 나섬에 따라 올해 금융채 발행잔액은 지난해보다 20% 이상 줄어들 것으로 예상된다. 또 정부가 올해도 흑자재정을 유지한다는 계획이어서 국채의 발행물량도 크게 늘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늘어난 채권 수요=그동안 채권의 공급원이었던 은행들이 올해부터는 채권의 수요자로 변해 채권투자를 늘리고 있다. 가계대출의 축소로 자금여력이 생겼기 때문이다. 여유자금으로 주식에 투자할 수도 있지만 아무래도 수익률이 안정적인 채권쪽에 자금이 몰릴 것으로 전망된다. 여기다 돈을 굴릴 데가 마땅찮은 신용협동조합과 새마을금고도 채권투자에 적극 나서고 있다.

동양증권에 따르면 신협과 금고는 지난해 1~9월까지 월 평균 5백억원어치의 채권을 매입했으나 지난달에는 채권 매입규모가 8백억원을 넘어섰다.

이처럼 수요가 늘자 국고채(3년 만기)금리는 지난해 1월 6.03%에서 지난달에는 4.77%로 낮아졌다.

동양증권 김병철 금융상품운용팀장은 "국민연금과 장기보험이 사들이는 고정물량만 연간 30조원어치인데 은행과 신협까지 채권 매입에 나서 채권 기근현상이 심해지고 있다"며 "주식시장이 살아나지 않는 한 채권값 상승(금리 하락)은 계속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김준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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