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고정애의 시시각각

청와대가 했어야 할 네 가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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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4면

고정애
논설위원

이래저래 GM의 최고경영자 앨프리드 슬론이 했다는 말이 맴돈다.

 “우리가 사람들을 배치하고 적절한 자리에 임명하는 데 4시간씩 쓰지 않는다면 우리는 아마 우리의 실수를 처리하느라 400시간을 소비해야 할 것입니다. 나에겐 그럴 만한 시간이 없어요. 당신은 내가 모든 사람을 정확히 판단할 것이라고 생각하겠지만 그런 사람은 세상에 없어요. 우리가 실수를 적게 한다는 건 잘 판단해서가 아니라 신중하기 때문입니다.”(『피터 드러커 자서전』)

 인사(人事)에 대한 조언이지만 인사를 ‘위기관리’로 바꿔도 무방할 게다. 윤창중 전 청와대 대변인 사건을 보며 든 생각이다. 청와대는 “박근혜 대통령의 성공적 방미(訪美)를 한 사람이 올바르지 못한 문제로 훼손한 게 사건의 본질”(이남기 홍보수석)이라고 여기거나 여기도록 몰아가지만 청와대의 대처도 문제였다. “일을 저지른 사람이나 그 수습하는 윗사람들이나 어쩌면 수준이 그렇게 똑같은지 모르겠다”는 게 윤여준 전 의원만의 탄식은 아니다. 제대로 된 청와대였다면 다음과 같이 움직였어야 했다.

 ①진상 파악. 사건·사고는 늘 터진다. 가장 먼저 할 일은 언제나 가능한 한 진실에 가까운 최대치를 파악하는 거다. 이번엔 피해자도, 윤씨도, 운전기사도 충실히 조사해야 했다. 하지만 문화원장이 피해자로부터 자초지종을 들은 건 10분간이었다. 이 수석이 윤씨와 대화한 건 5분이었다. 동분서주한 건 문화원장과 청와대 행정관 두 명뿐이었다. 만일 이 수석이 대통령 행사 배석 대신 사태 파악에 나섰더라면 그에겐 7시간 가까이 있었다. 15분이 아닌 7시간, 아니 단 몇 시간만이라도 투입했다면 150여 시간째 이러고 있진 않을 거다. 이 단계에서 대통령에게 발생 보고도 했어야 한다.

 ②현장 대책회의. 이 수석뿐 아니라 세 명의 수석(주철기·조원동·최순홍)도, 서울의 허태열 대통령 비서실장과 이정현 정무, 곽상도 민정수석도 머리를 맞대었어야 했다. 청와대 조치로 수습될 것인가, 윤씨를 귀국시켜야 하나, 그렇다면 시점은, 아니면 수사에 응하도록 하는 게 나은가 판단했어야 한다.

 전 과정에서 청와대가 진상 규명에 적극적이란 인상을 줘야 했다. 솔직 또 솔직해야 했다. 거짓말, 특히 “(윤 전 대변인의) 부인이 아파서 귀국했다”는 식으로 곧 드러날 거짓말은 절대 금물이었다.

 ③사과. 사과해야 사태가 종결된다. 그러나 사과한다고 종결되는 건 아니다. 정치인들의 사과는 대개 허례(虛禮)여서다. “사과한다”고 외쳐도 그리 받아들여지지 않을 가능성이 크다는 얘기다. 사과하는 이가 책임을 인정하느냐가 분기점이다. 59시간여 사이 이뤄진 박 대통령과 허 실장, 이남기 수석의 사과문엔 공통점이 있다. 방미 성과를 강조한 점이다. 박 대통령의 경우 사과 발언은 490자, 방미 성과는 930자였다. “방미 성과를 되살려 내려 사과한 게 아니냐”고 오해하는 이유다.

 ④후속조치. 즉각적이고 강력한 행동이 뒤따라야 했다. 전 청와대 고위 인사는 “암 부위보다 더 많이 도려내는 암 수술과 유사하다”고 했다. 맞는 말이다. “술 마시는 사람은 순방에서 뺀다” “공직 기강을 강화한다”는 수준이어선 곤란하다. “앞으로 이런 일이 생기면” 책임을 묻겠다고 할 게 아니라 이번 일에 대한 책임도 물어야 했다. 잘못 대처한 사람도 포함해서 말이다.

 사실 대처 과정을 보면 청와대 고위직 모두 크고 작은 잘못을 했다. 이남기 수석은 말할 것도 없고 허 실장도 상황을 장악하지 못했다. 민정수석은 법만 따졌고 정무수석은 투명망토라도 걸친 듯했다. 참모들 너나없이 대통령에겐 말 한마디 못하면서 윤씨를 손가락질해야 제 허물이 가려지는 듯 굴었다. 그러면 윤씨를 중용했던 게, 그런 참모들을 기용한 게 박 대통령이란 사실이 도드라진다는 걸 몰랐다.

 하도 ‘신중’한 사람이 안 보여서 하는 말이다.

고정애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