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작의 기쁨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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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어느날의 일이다.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대학교에 다니게 되자 고교시절과는 달리 옷차림에 관심이 가게되었다. 하지만 「스커트」하나 하는데도 호주머니와 의논을 해야하는 가난한 현실이니 어쩔수없이 일요일아침부터 고등학교때의 재봉「노트」를 열심히 뒤적여가며 언니의 주름 「스커트」를 귀여운 「주니어」용 「세미 스커트」로 고쳤다.
○…앞판과 뒤판을 박고 앞을 트고 단추를 주욱 달았다. 그리고 양쪽에 예쁜 「포키프」까지 달고 나니 아주 썩 멋있는 「스커트」한벌이 생겼다. 내심으로 내자신이 대견스럽게 일류 「디자이너」나 된것처럼 자신이 생겼다. 완성된「스커트」는 그냥 나를 기쁘게만 해주었다. 기쁜 마음에 「스커트」를 성큼 입고는 그길로 친구정아의 집엘 달려갔더니 정아왈,『아이유 멋있는데, 근데 이게 웬글씨니?』 무의식중에 무슨 글씨? 하며 뒤돌아본 순간 나는 그만 그 자리에 주저앉고 말았다.
○…「스커트」뒤에는 「뒤」라는 글씨가 연필로 써있었던 것이다.
뒤판과 앞판을 구별짓기 위해 써논 글씨를 깜빡 잊고 그냥 달려나온 것이다. 나는 얼굴이 홍당무가 되면서도 바늘을 잡을 수 있는 내마음의 자세가 자랑스럽게 느껴졌다. (김숙희· 전주시 태평동1가 218의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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