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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치초 학부모의 이기심인가, 안전 무시한 졸속 행정인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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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일 오후 대치초 학생들이 귀가하고 있다. 학부모들은 "학교 건너편에 빗물펌프장을 짓는 공사를 하면 아이들 안전이 위협받는다" 고 주장한다.

주민의 님비(Not In My BackYard·지역이기주의)현상인가, 행정 당국의 안전불감증인가.

 강남구 대치동은 요즘 빗물펌프장 건설을 둘러싸고 시끌시끌하다. 대치초등학교 앞에 들어선다는 소식에 대치초 학부모들은 “공사로 애들 통학로가 막혀 안전에 문제가 생긴다”며 결사 반대하고 있고, 펌프장을 추진 중인 서울시는 “님비 현상”이라며 어떻게든 공사를 강행하겠다는 입장이다. 어떻게 된 일인지 알아봤다.

“대체 어떻게 학교 통학로를 막고 빗물펌프장을 건설한다는 거죠. 공사 시작하면 우리 애는 전학시킬 거예요.”

 대치초 학부모들은 요즘 신경이 잔뜩 곤두서 있다. 학교 앞에 빗물펌프장이 들어설 거라는 소식 때문이다. 서울시와 강남구에 따르면 올 하반기 대치초교 건너편 양재천변에 빗물펌프장을 세운다. 장마철마다 벌어지는 대치사거리 침수를 막기 위해서다. 하지만 빗물펌프장 건립은 난관에 부닥친 상태다. 대치초 학부모의 반대 때문이다. 지난달 25일에는 학부모 200여 명이 강남구청 앞에서 반대시위를 벌이기도 했다. 이들은 “갈팡질팡한 행정 탓에 애꿎은 대치초 아이들이 희생된 것”이라고 주장한다. 무슨 얘기일까.

 통학시간인 1일 오전 8시30분쯤 대치초 정문 앞 인도는 학생들로 붐볐다. 폭이 1m 정도에 불과한 좁은 인도에서 아이들이 장난치며 학교에 가고 있었다. 학부모 이인영(42)씨는 “만약 인도 바로 옆 도로에서 공사를 하면 아이들 안전을 보장할 수 없는 게 아니냐”며 한숨을 쉬었다.

 

사실 대치동 주민 입장에선 하루라도 빨리 빗물펌프장을 짓는 게 필요하다. 대치사거리가 장마철마다 심각한 침수 피해를 겪어왔기 때문이다. 2011년 7월에는 침수된 대치동의 한 상가 건물 지하실에서 환경미화원이 익사하기도 했다. 대치초 학부모도 빗물펌프장 건설에는 동의한다. 하지만 장소가 문제다. 대치사거리에서 빗물펌프장까지 파이프관을 이어야 하는데, 이를 위해 대치초 정문 앞인 남부순환로 394길과 대치초 삼거리를 파헤쳐야 한다. 공사 기간 1년 동안 학교 주변이 온통 공사장이 되는 것이다. 학부모 입장에선 학생들 안전 문제를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도로 폐쇄로 통학길이 막히는 것도 문제다. 삼성아파트 거주 학생은 주로 부모가 태워주는 차로 통학하고 있지만 만약 공사로 이 길이 막히면 남부순환로부터 걸어서 학교에 가야 한다. 이럴 경우 학생 1000여 명이 한꺼번에 학교 앞 좁은 인도를 이용할 수밖에 없다. 학부모 소미경(41)씨는 “평소에도 아이들끼리 장난치다 벽돌담에 얼굴이 부딪치는 등 각종 사고가 벌어지는 곳”이라며 “절대 받아들일 수 없다”고 말했다.

 대치초 학부모들이 이렇게 분개한 데에는 안전 문제 외에도 서울시와 강남구의 엇박자 행정이 한몫했다.

 지난해 6월 강남구청이 실시한 주민설명회에서는 빗물펌프장 후보지가 다른 곳이었다. 결과 타워팰리스 인근 개포동 근린공원과 영동5교 주변 양재천변, 그리고 쌍용아파트 인근 SETEC 부지 세 곳이다.

 그런데 지난달 서울시가 실시한 주민설명회에서 대치초 앞이 갑자기 유력 후보지로 등장했다. 양재천변이 후보지에서 빠지고 개포동 근린공원과 SETEC 부지는 계속 후보지로 남았다. 후보지 세 곳을 제시하긴 했지만 서울시는 “사실상 대치초 앞으로 결정됐다”고 통보했다.

 대치초 학부모들이 더 거세게 반대하는 이유다. 강남구와 서울시가 공통적으로 거론한 두 후보지를 놔두고 대치초 앞을 빗물펌프장 부지로 선정한 걸 납득하기 어렵다는 것이다. 학부모 김지은(35)씨는 “타워팰리스 등 주요 후보지 주변 아파트 주민들이 거세게 반대하니 ‘폭탄’을 계속 돌리다가 만만한 초등학교로 떨어뜨린 것”이라고 주장했다.

 서울시가 용역을 의뢰한 S사에서 내놓은 보고서도 학부모 반발을 증폭시켰다. 대치초가 ‘최적지’인 이유 중 하나로 ‘상대적으로 민원이 적다’고 적어놨기 때문이다. 반면에 SETEC 부지와 개포근린공원에 대해서는 ‘주변 주민의 극심한 민원 발생’이라고 적고 있다.

 서울시는 “사실이 아니다”라고 주장했다. 이진용 서울시 하천관리과장은 “대치초 앞을 선정한 것은 다른 후보지보다 공사비 절감이나 침수 절감 효과 등에서 좋은 평가를 받았기 때문”이라고 해명했다. ‘민원’ 항목에 대해서도 “검토사항 중 하나일 뿐”이라고 설명했다. 구자훈 서울시 하천관리과 치수설비팀장은 “공사를 하더라도 양재천로 부분은 야간에만 하고 도로 부분에는 철판을 씌워 통학에 큰 지장이 없도록 할 것”이라고 말했다.

 서울시 관계자는 “여름이 다가오는데 반대에 부닥쳐 답답하다”며 “공사를 못해 여름에 또 침수가 발생하면 결국 주민 피해로 돌아갈 것”이라고 경고했다.

 이에 대해 강남구는 불똥이 튈까 염려하는 분위기다. 이권구 강남구청 치수방재과 치수팀장은 “새로운 용역을 하겠다”고 밝혔다. 이 팀장은 “우성·선경 아파트 등 대치초 통학권 주민과 전문가 등으로 구성된 협의체를 만들고 사업지의 타당성을 검증할 것”이라고 말했다. 지난해 발표한 용역 결과에 대해서는 “공사 부지에 대해 심층적인 조사를 하지 못했다”며 스스로 ‘용도 폐기’했다.

 하지만 강남구의 재용역 실시 방침에 대해 또 다른 혼란을 가중시킬 거라는 우려 도 있다. 대치동의 한 주민은 “애초에 사태가 커진 게 서울시와 강남구가 서로 다른 용역 결과를 내놓았기 때문인데 또 무슨 용역을 한다는 건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서울시 관계자도 “학부모가 대거 참여하면 서울시와 다른 용역 결과가 나올 것은 불 보듯 뻔하다”며 “강남구가 무책임한 일을 벌이고 있다”고 비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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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유성운·조한대 기자
사진=김경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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