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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 기회의 땅 … 한·중·일 북극 삼국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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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8면

한국 첫 쇄빙연구선 ‘아라온호’가 1m의 북극 빙하를 뚫고 극지 탐사를 수행하고 있다. 60여 종의 최첨단 연구장비를 갖춘 아라온호엔 헬기도 탑재돼 있다. [사진 극지연구소]

북극은 세상 끝 미지의 땅이다. 각국이 조약으로 평화롭게 연구개발을 하고 있는 남극과는 또 다르다. 1994년 유엔 해양법협약으로 인접국의 배타적 경제수역(EEZ)을 인정키로 했지만 연안 국가 사이의 분쟁으로 경계 획정이 지연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북극이사회’는 국제 영향력을 가진 유일한 국제기구 역할을 하고 있다.

한국 GDP의 14배 자원 묻혀 있어

 한국은 2008년 임시옵서버 지위를 얻었지만 정보 접근에 제한을 받고 정책결정에서 배제돼 왔다. 그러나 ‘영구 옵서버’ 자격을 획득하면 북극 프로젝트의 재정 후원자, 지역 협력자로 참여할 수 있다. 남상헌 극지연구소 미래전략실장은 “북극권 국가의 배타적 움직임에 대응하고 연구 및 자원 개발 강화를 위해서라도 북극이사회 영구 옵서버 진출은 필수적”이라고 말했다.

 북극권은 면적 4000만㎢로 지구 표면의 8%, 육지 면적의 15%를 차지한다. 최근 빙하가 빠른 속도로 녹으며 북극해 인접 국가들이 눈독을 들이기 시작했다. 2008년 미국지질조사국(USGS)의 조사 결과 전 세계 미발견 석유와 가스량의 4분의 1(4120억 배럴)이 북극권에 분포하고 2조4100억㎥의 메탄가스를 비롯해 ‘불타는 얼음’(burning ice)으로 불리는 가스 하이드레이트와 니켈, 철광석, 구리, 우라늄, 아연, 다이아몬드 등의 자원이 매장된 것으로 밝혀졌다. 명태, 대구, 연어, 청어, 고등어 등의 어족자원도 풍부해 북극해 주변의 그린란드 남부 연안과 베링해는 전 세계 수산물의 37%를 생산한다. 한국해양연구원 김웅서 박사는 “북극해에 매장된 에너지 자원과 어족 자원의 경제 추정가치는 약 13조6415억 달러로 우리나라 총 국내총생산(GDP)의 14배에 달한다”며 “자원이 부족한 국가에는 기회의 땅”이라고 말했다.

 대서양과 태평양을 연결하는 북극해도 매력적이다. 현재 부산항~수에즈 운하~네덜란드 로테르담 항로를 통한 운항 길은 2만100㎞(24일 소요)지만 북극해를 통한 북서 항로를 개척할 경우 부산항~북극 항로~로테르담 항의 거리는 1만2700㎞(14일 소요)로 줄어든다. 해적의 위험도 없어 보험료 부담도 줄일 수 있다.

 정태권 북극해항로연구센터 센터장은 “향후 아시아와 유럽을 오가는 컨테이너의 70%가 북극 항로를 이용할 전망”이라며 “북극 항로를 통한 물류비 절감 혜택을 입는 국가만 해도 한·중·일 3국을 포함해 유럽권 국가까지 20여 국에 달한다”고 말했다. 북극해가 열릴 경우 쇄빙선 등 조선산업과 탐사 시추와 관련된 해양플랜트 산업의 새로운 중흥기가 열릴 가능성도 높다.

일찍 합류한 중·일, 항로 개척 착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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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북극 이권을 둘러싸고 극동의 한·중·일 3국의 진출 경쟁이 뜨거워지고 있다. 3국은 모두 15일 스웨덴 키루나에서 열리는 북극이사회에 영구 옵서버 신청을 했다.

 가장 먼저 관심을 보인 국가는 일본이다. 일본은 1980년대 말부터 북극해 항로 개척을 위해 시베리아와 사할린 등지에서 러시아 등과 공동으로 프로젝트를 진행해 왔다. 지난해 6월에는 북극을 자원 개발 중점지역에 포함하는 ‘자원 개발 5개년 계획’을 발표했다.

 중국은 99년부터 쇄빙선 ‘설룡호’를 운영하며 북극 연구에 착수해 지금까지 5차례 연구 항해를 실시했다.

 지난해 4월에는 원자바오(溫家寶) 전 총리가 아이슬란드와 스웨덴을 방문하고 6월 후진타오(胡錦濤) 전 국가주석이 덴마크를 방문하는 등 북극이사회 영구 옵서버 진출을 위한 활동을 전개했다. 중국은 2013년까지 90명이 탑승할 수 있는 신규 쇄빙선도 건조하고 있다.

우린 담당부처도 제대로 안 정해져

 한국은 2002년 노르웨이 스발바르 제도 니알슨에 세계에서 12번째로 다산과학기지를 세운 게 북극 연구의 시발이었다. 이후 2009년 쇄빙연구선인 아라온호를 건조하고 이명박 전 대통령이 지난해 9월 처음으로 북극을 순방하면서 상대적으로 늦게 북극 경쟁에 뛰어들었다.

 전문가들은 한국의 경우 빙하 냉전(Ice cold war)의 현실 속에 북극항로 상용화와 자원 개발 참여 등에 관한 북극정책 마스터플랜이 아직 부재한 상황이라고 지적한다.

 윤진숙 해양수산부 장관이 지난달 취임사를 통해 “북극 정책의 주무부처는 해양수산부가 확실하다”고 강조하고 올해부터 우리 해운선사의 북극 항로 시범 운항을 추진하고 있지만 아직까지 주무부처에 대한 교통정리조차 이뤄지지 않았다.

  한국극지연구위원회 박병권 위원장은 “현재 북극 항로 관련 업무는 해양수산부, 이에 수반되는 국제협정 등 대외업무는 외교부, 자원 관련 업무는 산업통상자원부로 나눠져 있다”며 “중국이나 일본도 북극과 관련해 전담조직을 갖추고 있는데 우리는 해양수산부만 해도 고작 담당 사무관 1명을 두고 있을 뿐”이라고 지적했다.

정원엽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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