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쟁의 국회운영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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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19일부터 속개키로 되어있는 국회는 의장전인책문제로 여·야가 정면 대립, 큰 파란이 일어날것으로 예상된다. 신민당측은 단독국회운영 및 28파동에 대한 의장단의 책임을 따져 정·부의장이 물러나지 않는 한 일체의 의사협정협의에 응할 수 없다는 방침을 굳히고있는데 대해 공화당측은 의장단 인책 문제는 재론치 않고, 경방법안동 의안을 다루어나가기로 강경한 원내대책을 세우고 있는 것이다.
1·21무장공비납치사건에 충격을 받아 긴급 소집됐던 국회가 엄중한 시국이 제대로 수습되기 전에 또다시 격심한 정쟁의 무대로 화할 징조를 보이고 있다는 것은 심히 유감스러운 일이다. 이는 이미 고질화돼버린 정쟁이 요즘과 같이 긴장된 상황하에서도 지양되기 어렵다는 증조이지만 대외관계로 보아서 국민의 초당파적 결속의 과시가 무엇보다도 절실히 요청되는 이 시기에, 국회가 구태의연하게 비생산적인 정쟁만 뒤풀이한다고 하면 이는 스스로가 의회정치의 권위를 실추시키는 결과가 될 것이다.
우리의 국회의원들이 오늘날 한국정세의 위기심도를 어느 정도까지 파악하고 있는지는 의문이지만, 국회 간부의 승용차를 고급차로 바꾸고, 의원 거마비를 전반적으로 인상할 책동이나 하고 있는 것을 보면 그들의 정치적 각성도는 국민 대중의 그것에 비해서도 월등하게 모자란다는 논이 나을법하다.
정쟁의 소용돌이 속에서 객관 경세를 냉정히 고찰할 수 있는 감각과 능력이 마비된 국회의원의 눈에는 오늘의 정세가 엄중해 보이지 않을는지 모른다. 그러나 정쟁의 흥분 속에 말려들지 않고 있는 국민의 눈으로 본다면 국회가 앞으로도 정권투쟁의 공방전을 치열하게 전개하고 부질없는 당쟁만 되풀이하다가는 민주정치의 기본질서를 굳건하게 지켜나가기 어려울 뿐더러 자칫하다가는 현하의 정권투쟁자세를 백해무해한 것으로 단정하는, 극단적 우익세력에 의해 무참하게 짓밟힐 우려마저도 없지 않다.
우리는 물론 아무리 비상시국하에서도 정상적인 의회정치가 보전되어 건전한 기능이 발휘되기를 원하는 것이요, 때문에 반의회주의 세력의 대두를 특별히 경계한다. 그러나 국회 자체가 시국에 한인식이 투철치 못하고 정치적 각성이 불충분하다고 한다면 한국의 의회 정치는, 명실공히 종말의 위기에 놓일 가능성이 있음을 여기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지금 문제가 되고있는 의장단 인책 문제만 하더라도 그것은 지금 한국이 당면하고 있는 산적한 중요 과제에 비추어 볼 때에는 한낱 소말적인 안건에 지나지 않는 것이다. 단독국회운영이며 28파동은 공히 다수당이 소수·당의 존재를 철저히 무시하고 또 소수당이 극한적인투쟁을 벌였던 과열적 당쟁의 소산이지, 결코 어느 개개인만이 책임질 문제는 아니다. 물론 책임의 소재를 엄격히 밝히면서 국회운영을 정쟁화하기 위해서는, 자진 사퇴하는 것이 가장 좋은 방책일 것이다.
그러나 이미 사퇴할 의사가 전혀 없다는 것을 공식표명한 이상, 이 문제를 가지고 국회를 공전시켜서는 안된다. 의장회의 사퇴를 요구하는 신민당은 정정당당하게 사퇴권고결의안을 내놓을 것이요, 여·야는 각기 각자의 양심에 따라 다수결로써 이 문제에 대한 깨끗한 매듭을 짓도록 해야할 것이다. 시국이 엄중해질수록 국회는 여·야간에 모든 쟁점을 신속히 매듭짓고 초당파적 입장에서 국난 타개에 앞장섬으로써 국민의 신뢰를 되찾도록 해야 한다.
지난 1·21사건 이래의 충격으로 온 국민이 비상한 각오를 가지고 국토 방위, 북괴 타도를 다짐하고 있는 이 시기에, 유독 국회의원들만이 낡은 정치감각을 못 버리고 특권층으로서 더 호의호식할 수 있는 대책이나 강구하는데 골몰하고 있는 것 같은 인상을 주고있는 것은 또 하나의 국가적 불행이라 아니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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