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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상임금, 상용·임시직 양극화 심화시킬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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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10면

김영배
한국경영자총협회 상임부회장

통상임금 문제로 산업현장이 술렁이고 있다. 지난해 ‘정기상여금이 통상임금에 해당한다’는 법원의 판결이 제시된 이후 논란이 심해지고 있다. 특히 며칠 전 GM 회장이 추가 투자 계획을 언급하면서 통상임금 문제 해결을 요청하자 방미 중이던 박근혜 대통령이 “합리적인 방법을 찾아보겠다”고 밝힌 이후 노사정 간 갈등이 첨예해지고 있다. 통상임금은 초과근로수당 등 각종 법정수당의 기준이 되는 임금인데, 최근 법원의 판결대로라면 각종 수당과 퇴직금 부담 등이 연쇄적으로 증가하게 된다.

 우리 기업은 1980년대 마련된 정부 행정지침에 따라 정기상여금을 통상임금에 포함하지 않았다. 노사가 정부지침에 맞춰 임금 인상액을 고려하고 정기상여금과 각종 수당의 범위도 합의하는 등 사회적 공감대가 형성된 것이다. 그러나 지난해 대법원의 판결은 이전의 유사 판결과 다르고, 노동 현장에서 별 이의 제기 없이 유지되어 왔던 정부지침과도 달라 혼란을 부추기고 있다.

 통상임금 문제는 우리나라 거의 모든 기업에 해당되는 문제로, 국가 경제와 일자리에 미치는 영향이 지대한 사건이다. 대법원 판결 취지에 따라 정기상여금이 통상임금에 포함될 경우 우리 기업이 일시에 부담해야 하는 비용은 최소 38조원에 달한다. 초과근로수당의 지급 기준이 되는 통상임금 액수가 커지고, 이에 따른 임금 총액 증가로 퇴직금 등 간접노동비용 부담이 상승하기 때문이다. 더 큰 문제는 매년 8조원 이상의 비용 부담이 추가적으로 발생한다는 점이다. 특히 중소기업이 일시에 부담해야 하는 비용은 최소 14조원이며, 매년 3조원의 추가비용이 발생한다.

 게다가 통상임금 문제는 근로자 간 양극화를 심화시킬 수 있다. 임금 총액 중 정기상여금 비중은 상용직이 13.6%인 데 반해 임시·일용직은 2.7%에 불과하다. 결국 모든 과실은 정기상여금 비중이 큰 강성노조 소속의 고임금 정규직에게 돌아갈 것이다.

 이러한 노사 혼란과 경제적 피해의 근본 원인은 모호한 통상임금 규정에 기인한다. 일례로 어떤 기업에서 월드컵이 개최되는 4년마다 모든 근로자에게 특정 수당을 정기적으로 지급했다고 하자. 현재 판례는 이러한 수당도 정기적·일률적 지급이므로 통상임금의 범주로 판단하고 있다. 이것이 상식적인 수준인가. 우리나라의 통상임금과 유사한 제도를 두고 있는 일본은 1개월 내에 지급되는 임금만을 할증 임금의 기초로 한정해 사실상 분쟁이 거의 없는 실정이다.

 지난 수십 년간 노사는 임금협상 때마다 초과근로에 영향을 미치는 기본급 대신에 상여금을 인상시키는 관행을 보여왔다. 일본과 마찬가지로 월 단위로 지급되지 않는 임금은 통상임금으로 인정하지 않는 노사 간의 오랜 관습을 한순간에 부정해서는 안 된다. 사법부의 사려 깊은 판단이 절실한 시점이다.

김 영 배 한국경영자총협회 상임부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