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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주 양동마을, 성리학 이념 깃든 힐링의 성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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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0면

양동마을은 조선시대 씨족마을의 전형적 형태를 갖추고 있다. 언덕 위에 종가가 있고, 골짜기를 따라 기와집과 초가집들이 차곡차곡 늘어서 종가를 감싼다. 현재도 주민 400여 명이 살고 있다. [중앙포토]

“무첨당(無?堂)은 어떤 의미인가요.”

 “회재(晦齋) 이언적(1491~1553) 선생의 맏손자인 이의윤(1564~1597)의 호에서 따온 것인데, ‘조상에게 욕됨이 없게 살겠다’는 의지를 담고 있습니다.”

 “지금도 사람이 살고 있나요.”

 “평상시에는 거주하지 않지만, 종가의 큰 행사 등에는 사용하고 있습니다.”

 11일 오후 경북 경주시 양동마을 서북쪽 산등성이에 있는 무첨당 대청마루에서는 회재 이언적 선생의 17대손이자 여강이씨의 종손 이지락(46)씨의 이야기 마당이 펼쳐졌다.

 보물 제411호로 지정된 무첨당은 500여 년 전 양반가옥의 모습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는 양동마을의 대표적인 건축물이다.

이날 열린 제1회 세계문화유산양동마을포럼 참석자들은 포럼이 끝난 후 양동마을을 찾아 마을 곳곳에 남아 있는 유교 문화의 흔적들을 둘러봤다.

 경주 양동마을이 안동의 하회마을과 함께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된 것은 2010년이다. 지난해에만 20여만 명이 이 곳을 찾았다. 하지만 양동마을이 갖는 역사적 의미와 이 지역의 대표적 사상가인 회재 이언적 선생의 학문세계에 대한 깊이 있는 조명은 아직 미흡한 실정이다.

삶과 자연을 대하는 경건함 강조

 11일 호텔현대경주 그랜드볼룸에서 열린 제1회 세계문화유산양동마을포럼 ‘유교문화, 양동마을, 회재 이언적’은 회재 선생의 사상과 그 사상이 스며들어 있는 양동마을을 재조명하는 행사였다. 회재이언적기념사업회 이동건 회장을 비롯해 최양식 경주시장, 서예가 이동익씨, 건축가 김원씨 등 500여 명이 참석했다.

  조선중기의 대표적 성리학자인 이언적은 양동마을을 대표하는 인물이다. 우리나라 성리학의 이론체계를 확립해 퇴계(退溪) 이황 등 후대 학자들에게 큰 영향을 미쳤다.

 이날 포럼에서 한국학중앙연구원의 한형조 교수는 “그동안 유교의 정치적, 의례적인 측면이 강조됐지만, 사실 유교의 핵심은 삶을 대하는 태도, 내면적 훈련을 강조하는 심학(心學)이었다”면서 회재의 사상을 현대의 ‘웰빙’, ‘힐링’ 열풍과 연계해 설명했다.

 특히 20대의 젊은 회재가 영남지방의 선배학자들과 벌였던 ‘무극태극(無極太極) 논쟁’은 이런 특징을 잘 보여준다. 성리학에서 말하는 ‘태극’은 결국 ‘내 안의 신’과도 같은 의미인데, “뚜렷하게 그 존재를 의식하고, 경건과 두려움으로 그 뜻을 받들며 살아간다”는 회재의 사상은 현대인들의 정신적 위기를 극복하는 하나의 방법을 제시하고 있다는 것이다.

회재 이언적의 사상 되돌아본 계기

11일 양동마을 무첨당에서 관람객들이 여강 이씨 종손 이지락(46)씨와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고려대 이승환(철학과) 교수는 회재 사상의 생태학적 의미를 돌아봤다. 회재는 자연을 온갖 생명이 약동하는 ‘생명의 장’이자 사심(私心)이 씻겨나간 ‘도덕적 세계’로 인식했다. 이 교수는 “그의 자연과 인간에 대한 인식은 욕망으로 물든 현대인에게 깊은 울림을 던진다”고 말했다.

  내면을 다스리는 학문으로서의 유교 사상이 공간으로 잘 구현된 사례가 양동마을이다. 이상해 성균관대 명예교수는 “양동마을 가옥의 사랑채와 정자 등에는 조선시대 성리학자들이 추구한 천인합일(天人合一) 사상이 반영돼 있다. 정자와 서당 등은 이를 후대에 전하는 교육활동의 근거지였다”고 설명했다. 산 위쪽의 종가와 사당을 언덕 아래쪽 초가집들이 둘러싸고 있는 양동마을의 구조는 조선시대 엄격했던 신분과 위계질서를 보여준다.

 봄 기운이 한창이던 이날 양동마을은 하루종일 사람들로 북적였다. 봄 가을 주말에는 2000명 넘게 찾아온다고 한다. 경성대 강동진(도시공학과) 교수는 “특성화된 교육프로그램 등을 마련해 양동마을을 조선의 정신가치를 후대에 전하는 교육의 장으로 활용할 필요가 있다”고 제안했다.

경주=이영희 기자

◆양동마을=경주시 북쪽 설창산에 둘러싸인 월성 손씨, 여강 이씨 두 가문의 씨족마을. 1984년 중요민속자료 제189호로 지정, 2010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됐다. 무첨당(보물 411호), 향단(보물 412호), 관가정(보물 442호), 서백당(중요민속자료 23호)을 비롯해 양반가옥과 초가 160호가 옛 모습 그대로 보존돼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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