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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월'의 서양문화 '추월'의 동양문화 무엇이 더 인간적인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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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1면

중국 신화에 나오는 상상의 동물 탐(貪). 공자의 고향 취푸(曲阜)에 있는 그림이다. 만족을 모르는 탐욕을 상징하는 탐은 태양까지 집어 삼키려고 했다. 그림 왼쪽 위 둥근 태양이 보인다. 동양철학은 하늘이 내린 본성에 비춰 탐욕을 경계할 것을 강조했다. [사진 신정근]

21세기 아시아 시대를 열 상상력과 지혜를 모색하는 ‘아시아창의리더십포럼’. 그 다섯 번째 순서가 10일 오후 서울대미술관 오디토리움에서 열렸다. 이날 주제는 지속가능한 문명. ‘지속성의 위기’에 봉착한 서구 합리주의에 대해 아시아는 어떤 해결책을 제시할 수 있는지, 그 해답을 모색하는 자리였다.

 성균관대 신정근 유학대 교수가 ‘동아시아 사상과 지속가능성 : 더불어 사는 세계’를 주제로, 풍수지리학자 최창조씨가 ‘소통과 치유의 풍수’를 주제로 각각 강연했다. 포럼은 서울대미술관(관장 권영걸)이 주최하고 중앙일보·한샘이 후원한다.


지속가능성의 사전적 의미는 ‘미래의 발전 가능성을 해치지 않고 현재의 필요를 충족시키는 것’이다. 대략 1990년대부터 유엔 차원에서 국제사회의 새로운 화두로 제시됐다. 그만큼 미래의 성장 잠재력을 갉아먹는 난개발, 무한 개발의 폐해가 당시 심각하게 받아들여졌다는 반증이다.

 20년간 국제사회가 지속가능성의 노래를 부른 지금, 세상은 좀 더 살만한 곳이 됐는가. 신정근 교수는 공자·맹자에서 시작해 주자로 이어지는 중국 사상에서 지속가능한 삶의 모습을 찾을 수 있다고 강조했다. 서양과 동양의 종교관 비교를 통해 “서양문화가 비약·단절을 바탕으로 한 ‘초월(超越)의 문화’라면 동양문화는 점진적인 지속을 통한 ‘추월(推越)의 문화’다”라고 설명했다. 추월은 신 교수가 만든 말이다.

 최창조씨는 학문으로서 풍수의 한계와 의미, 자신이 지지하는 자생풍수의 계보 등을 개인사를 버무려 알기 쉽게 전달했다. 풍수는 다분히 주관적인 세계라는 것, 따라서 절대적으로 의지하기보다 주체적으로 받아들여야 한다는 게 주장의 요지다. 지속가능성과 관련, 환경을 해치지 않는 세심한 개발을 강조했다.

신정근 교수(左), 최창조씨(右)

  신정근 교수는 “서양의 유일신, 동양의 자연신(다신교)이라는 종교 차이가 동서양간 삶의 태도, 문화의 차이를 불렀다”고 말했다.

 서양의 유일신은 세상의 설계도를 가진 존재다. 세상의 모습은 신의 뜻에 따른 물질적 발현이다. 사람도 마찬가지다. 따라서 사람은 신의 뜻을 헤아려 그대로 살아야 한다. 이런 책임이 부과된 인간과 신의 관계는 일종의 계약 관계다.

서양의 유일신, 비약의 문화 낳아

 신 교수는 “인간이 약속을 깨뜨리면 분노한 신이 개입한다. 그러면 지금까지의 방식은 중단되고 새로운 방식이 시작된다”고 했다. 부정과 단절, 비약이다. 이런 삶의 방식은 자연스럽게 ‘지속될 수 없음’을 내포한다.

 반면 산·강·대지·조상 등 자연신을 섬기는 동아시아는 다신교 체계다. 이 세계에 절대자는 없다. 신은 위기의 인간을 구원하는 전능한 존재가 아니라 일종의 후원자, 인간이 잘못 되지 않도록 돕는 존재다.

 세상도 신의 설계도대로 만들어진 게 아니라 음양 등 대립 항목들의 충돌 등을 통해 끊임 없는 생성의 단계에 있다. 여기서 사람은 하늘의 뜻대로 살지 않는다. 하늘의 명령이 사람 안에 내면화된 성(性) 혹은 본성에 비춰 본성이 향하는 방향대로 살려고 노력하는 존재다.

 문제는 본성이 제시하는 행동 방향이 여럿일 수 있다는 것. 때문에 내면을 잘 살펴야 하고, 실수했을 경우 잘못을 시인하는 용기를 가져야 한다. 또 본성은 인간의 노력에 따라 성장하는 개념이다.

 신 교수는 “사람의 본성이 올바로 성장하려면 아름드리 나무가 성장하듯 많은 시간과 노력이 요구된다”고 했다. 이 과정이 추월이다. 또 추월문화가 단절되지 않고 지속되려면 사람은 주변을 살피는 건 물론 하늘과 땅의 역할에 참여해야 한다. 그게 결론이었다.

  최창조씨는 학문으로서 풍수학의 객관성을 부정하는 발언으로 강연을 시작했다. “땅은 거짓도 용서도 없다”며 최근 다리를 다친 얘기를 꺼냈다. 산에 올라 술 마셨다가 넘어졌다는 것. 그러면서도 “풍수는 일반화하면 지리멸렬하기 쉬운 대단히 주관적인 분야”라고 했다.

 음택(陰宅)풍수의 문제점도 지적했다. 효도를 명분으로 내세우지만 실제로는 조상에게 자신의 복을 빌 뿐이라는 것이다. “생전 부모에게 효도하지 않고, 시신을 좋은 땅에 모셔 복 좀 받아보자, 이런 태도는 인륜에 어긋난다”고 했다.

 결국 명당은 복잡한 풍수이론을 따져 찾을 게 아니라 마치 어머니의 품처럼 포근함이 느껴지는 장소가 명당이라는 얘기였다.

 최씨는 실제로 “30년 전 당대 최고의 지관들이 최악의 장소라고 평가한 곳에 아버지를 모셨다”고 했다. 생전 아버지가 무척 마음에 들어하던 장소다. 하지만 자신에겐 이후 아무런 화가 발생하지 않았다고 했다.

 최씨가 지지하는 자생풍수는 신라 말 도선 국사의 의해 중국에서 풍수가 들어왔다는 공식 역사 기록 이전, 이땅에서 생겨난 풍수다. 자생풍수의 맥은 고려 중기 묘청, 조선의 무학대사 등을 거쳐 동학 지도자 김개남에게까지 이른다.

풍수의 실체는 결함을 채워주는 것

 최씨는 “풍수무전미(風水無全美)라고 풍수적으로 완벽한 땅은 없다”고 했다. 어떤 땅이든 흠이 있게 마련이고, 그래서 땅의 흠을 메우는 비보(裨補)가 자생풍수에서 발달했다는 설명이었다.

 이런 풍수는 지속가능성과 어떻게 연결되는 것일까. 최씨는 “흔히 풍수를 무조건 환경을 보존하자는 주장으로 여기는 사람들이 있는데 그렇지 않다”고 했다. 철저히 통제되고 관리되는 개발이 있어야 실질적인 환경 보존이 가능하다는 게 풍수의 입장이라고 했다.

신준봉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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