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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럽서 몸값 뛰는 손흥민 대표팀만 오면 찬밥인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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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5면

손흥민이 12일 독일 분데스리가 호펜하임과의 경기에서 골을 터뜨린 후 손가락으로 하트 모양을 만들며 웃고 있다. 독일 일간지 빌트는 손흥민에게 양 팀 통틀어 가장 높은 평점을 부여했다. [진스하임 AP=뉴시스]

유럽에서 손흥민(21·함부르크)은 빅리그의 명문 클럽이 탐내는 특급 유망주다.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의 리버풀과 토트넘, 이번 시즌 유럽축구연맹(UEFA) 챔피언스리그 결승에 오른 독일 분데스리가의 도르트문트가 손흥민 영입을 위해 약 200억원의 이적료를 책정해 놓았다. 그는 12일 호펜하임과의 경기에서도 1골·1도움의 맹활약으로 4-1 승리를 이끌었다. 올 시즌 12골로 분데스리가 득점 9위다. 오른발(7골), 왼발(3골), 헤딩(2골) 등 어떤 방법으로든 골을 터뜨릴 수 있는 전천후 골잡이다.

 그런데 한국 대표팀에 오면 사정이 달라진다. 그라운드를 밟을 수 있을지 걱정해야 하는 신세다. 최강희(54) 대표팀 감독은 손흥민의 기량과 잠재력을 높이 평가하면서도 “좀 더 대표팀에 적응해야 한다”고 선을 긋는다. 손흥민은 천금 같은 결승골을 터뜨렸던 지난 3월 카타르와 월드컵 최종예선에서도 후반 35분 교체 투입돼 가까스로 출전 기회를 얻었다. 축구 본고장에서 극찬을 받는 유망주가 한국 대표팀에서는 천덕꾸러기가 되는 이유는 무엇일까.

 박지성과 안정환의 스승이었던 김희태(60) FC KHT 감독은 “축구 문화의 차이”라고 지적했다. “유럽에서는 선수 개인의 재량권이 크고, 자율적으로 움직인다. 하지만 한국 축구는 약속대로 움직이는 패턴 플레이가 많다. 프리롤(자유롭게 움직이는 역할)이 주어지는 함부르크에서는 잘 하다가 손흥민이 한국 대표팀에 오면 조직적인 플레이에 녹아들지 못하는 데는 이런 영향이 있을 것”이라고 진단했다. 그는 “유럽은 어릴 때 기본기를 충실하게 익힌다. 반면에 한국은 기본기와 창의성을 기르는 것보다 당장 승리하기 위해 미드필드, 윙포워드, 최전방 공격수의 움직임을 하나하나 지정해 주고 기계적으로 몸에 익힌다”며 “어려서부터 쌓아온 이런 차이가 프로클럽이나 대표팀에도 영향을 준다”고 덧붙였다.

 손흥민은 한국 축구의 시스템에서 벗어나 성장한 이단아다. 프로축구 선수 출신인 부친 손웅정(47)씨가 “내 자식은 나처럼 기본기가 부족한 선수로 만들지 않겠다”는 일념으로 직접 가르쳤다. 부친이 만든 축구센터에서 축구를 한 그는 잠시 동북고에 다녔지만 적응하지 못하고 자퇴했다. 그는 대한축구협회 해외 유학 프로젝트로 2008년 독일 함부르크 유소년 팀에 입단했고, 기량을 인정받아 2010년 프로로 데뷔했다.

 대표팀 미드필더 김두현(31·수원 삼성)은 “유럽에서는 공격력이 90이고 수비가 70인 선수가 있다면, 그 뒤에 수비력이 90이고 공격은 70인 선수를 배치해 선수들의 장점을 극대화한다. 하지만 한국에서는 공격과 수비가 모두 80인 선수를 선호하는 것 같다”고 말했다. 김호(69) 1994 미국 월드컵 대표팀 감독은 “손흥민은 완전히 여물지는 않았지만 스피드·드리블·슈팅력을 겸비한 선수다. 다른 선수와 조화를 이루며 능력을 발휘할 수 있는 시스템을 만드는 게 감독의 역할”이라고 말했다.

이해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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