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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춘과 핵항모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1면

5일은 입춘.
이제부터 겨울은 어쩔수 없이 무장을 푼다.
봄은 언제나 성급히 군다.
겨울이 아직 서슬이 퍼런데도 등을 떼민다.
무엄하게도 잔설속에서, 검은 땅속에서,시냇물 바닥에서 봄은 발을 구른다.
교외엘 나가면 깜짝놀란다.
봄은 어느새 교외의· 들판에서 야영을 하고있다.
기습이라도 할것 같다.
투명한 「비닐· 하우스」속에서 봄은 지금 한창 무르익는다.
오이도 추렁주렁, 상치도 푸릇푸릇, 도마도가 소담스럽다.
하긴벌써 남대문시장엔 봄의 첨병이 움막을 치고 있다.
담요를 두르고 앉은 상치,가마니속에 옹크리고 있는 호박, 소쿠리속에서 하품을 하는 도마도, 오이는 무더기를 지어서 좌판위에….
제주도산 「파이내풀」 까지 한몫 끼고보면 겨울은 기가 죽을것이다.
봄이 진을 치고 있는 교외의 야영지는 밤에도 불야성을 이루고있다.
「비닐·하우스」속엔 일열등 장치가 되어서 밤낮없이 24시간을 상춘의 낮으로 밝혀져 있다.
요즘의 짧고 희미한 낮으로는 꽃을 피우고 열매를 맺게할수 없다고 한다.
49공탄은 그속에서 연방땀을 뻘뻘 흘리고있다.
이쯤되면 계절은 요량을 할수없게 되었다.
어디가 겨울의 꼬리이며, 또 어디가 봄의 머리인지를….
인간은 염가로도 인공계절을 민들어 그 혜택을 아낌없이 받을수 있는 세상이 된것이다.
계절은 겨우 사람의 옷 소매와 목덜미의 느낌으로나 명맥을하는 꼴이 되었다.
그런 봄 바구니에서 감기에 걸려 쿨륵쿨륵 하는 또다른 인간의 면모는 쫒김을 당하는 자연의 회롱같아 자못 쓴웃움을 짓게된다.
그러나 지금 우리는 인공상춘에 쾌재를 부르고 있을수 만은 없다.
최근의 정세불안은 인간이 정치에얼마나 나약한 존재인가를 역연히 증언해·주고있다.
과연 우리는 계절감하나 제대로 간수하고 살수 없는 세상에 태어나있는가.
그것은 한척의 「엔더프라이즈」 핵항모에 의해서도 산산 조각이나는 백일몽에 불과한지드 모른다.
우리는 새삼 인간의 한계를 의식할때 입춘이고 뭐고 쓸쓸해지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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