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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적 차이는 중요치 않아…수사로 드러날 팩트가 핵심

온라인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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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창중 전 청와대 대변인은 11일 “문화적 차이로 인해 가이드(대사관 인턴)에게 제가 상처를 입혔다면 이해해 달라”며 “저는 성희롱이나 성추행이나 어떤 성적 의도를 갖고 행동하지 않았다”고 말했다.

그러나 미국 사법 당국의 수사 과정에서 그가 언급한 ‘문화적 차이’는 중요치 않다.

미국 로펌 셰퍼드멀린의 김병수(미국 변호사) 서울사무소 대표는 “자신의 행동이 문화적 차이로 인한 오해라는 해명은 별 의미가 없다”며 “워싱턴DC의 형법상 ‘성추행’(sexual abuse)에 해당이 되는지를 가리는 팩트(factㆍ사실관계)가 중요하다. 단순히 보면 이는 미국 시민권자가 외국인에게 성추행을 당했다고 신고해 미국 경찰이 조사를 진행 중인 사건”이라고 설명했다.

익명을 원한 다른 미국 변호사는 “성추행 범죄를 엄격히(harshly) 다루는 미국 사법 체계에선 가해자의 의도보다 피해자의 감정에 더 무게가 실린다”며 “문화적 차이를 핑계로 사회적 관대함을 기대하긴 어렵다”고 지적했다. 지나가는 아이가 귀여워 머리를 쓰다듬었다가 부모에 의해 성추행으로 고소당했다는 미국 이민 1세대의 얘기 역시 ‘문화적 차이’가 미 사법체계에선 잘 통하지 않는 걸 방증한다.

주(州) 법원마다 차이는 있지만 대체로 성추행과 관련한 미국 사법 당국의 입장은 강경하다. 2008년엔 텍사스주 법원이 40대 남성 제임스 케빈 포프에게 4060년의 징역형을 선고하기도 했다. 10대 소녀 3명을 2년간 성폭행한 혐의였다. 배심원의 유죄 평결 뒤 성폭행 1회마다 종신형 1회씩 모두 40차례의 종신형과 함께 피해 소녀 1명당 20년씩을 더해 4060년이라는 숫자가 나왔다.

주미 외교관들에게도 엄격한 잣대는 그대로 적용된다. 워싱턴DC에서도 변호사로 3년간 일한 김병수 대표는 “외교관들도 성추행 사실이 인정되면 추방당하는 경우가 꽤 있다”며 “개인의 권리를 우선시하는 미국 법의 특성상 상하관계를 이용해 저지른 성범죄에 더 단호한 경향을 보인다”고 말했다. 1982년엔 유엔 주재 북한외교관 오남철 3등 서기관이 미국 여성 추행 미수 사건으로 추방당하기도 했다.

당시 미 국무부는 오남철이 법정 출두를 거부하자 “유엔 주재 북한대표부를 폐쇄할 수도 있다”고 경고했다. 오남철은 결국 이듬해 추방됐다.

워싱턴DC 경찰국은 윤 전 대변인의 사건을 ‘성추행’으로 분류했다. 워싱턴DC 형법에 따르면 성추행은 중범죄(felony)에 해당하는 ▶성행위(sexual act) ▶성적 접촉(sexual contact)과 경범죄로 나뉜다. 이 중 윤 전 대변인에게 적용되는 혐의는 180일 이하 징역이나 1000달러 이하의 벌금이 부과되는 경범죄다.

한ㆍ미 간 범죄인인도조약은 1년형 이상의 범죄 혐의자를 인도 대상으로 하고 있다. 따라서 윤 전 대변인은 인도 대상은 아니다. 하지만 추가 조사 과정에서 여성 인턴이 “윤 전 대변인에게 협박을 당해 공포심을 느꼈다”고 주장하면 중범죄로 분류돼 인도 대상에 오를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법무법인 현의 박상연 미국변호사는 “윤 전 대변인이 자신의 직위를 이용해 인턴에게 압력을 가했다고 미 사법 당국이 판단하면 문제가 훨씬 복잡해질 수 있다”고 말했다.

반면 김태훈 변호사는 “미국은 성추행 사건에 대해 엄격한 증거를 요구한다”며 “이번 사건은 증거 확보가 쉽지 않을 전망이어서 윤 전 대변인의 혐의가 경범죄에서 더 올라갈 가능성은 크지 않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전수진 기자 sujiney@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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