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 북한 서소문 포럼

군이 언론인에게 매달리는 이유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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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2면

강영진
논설위원

육군과 해군은 1년에 한두 차례씩 국방문제를 담당하는 언론인들을 대상으로 자군의 현안을 알리고 지원을 요청하기 위한 설명회를 갖는다. 설명회 목적은 대략 갈수록 줄어가는 국방예산을 어떻게든 더 확보하기 위한 것이다. 그러나 설명회 내용이 곧장 보도되는 일은 드물다. 설명회를 진행하는 각 군의 입장에선 절실한 문제일 수 있지만 언론이 소개하기에는 시의성이 부족한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기자는 언제든 보도하지 않았던 내용들을 모아서 소개할 필요가 있다는 생각을 해왔다.

 해군의 설명회에 참석한 것은 모두 세 차례였다. 재작년 여름과 지난해 2월은 제주 해군기지 문제가 다급한 상황일 때였다. 워낙 우리 사회의 핵심 쟁점 사안이었던 터라 설명회의 효과는 꽤 컸다. 기자도 두 번 모두 제주 기지 건설의 필요성을 강조하는 글을 썼었고 함께 설명회에 참여했던 다른 언론사들도 크게 다뤘었다.

 이에 비해 지난해 하반기에 있었던 설명회는 거의 효과를 거두지 못했다. 해군은 만성적인 병력부족 때문에 작전을 수행하는 것이 갈수록 어려워지고 있다면서 3500여 명의 병력을 시급히 증원해야 한다고 호소했었다. 예컨대 산소가 희박한 잠수함 근무자의 경우 연간 승선일수가 100일을 넘지 않아야 하는데 180일에 달한다는 식이었다. 기자는 물론 대부분 언론사들이 해군의 호소를 외면했던 것으로 기억한다. 국방개혁의 방향과 맞지 않거나 아니면 청년 인구 감소 추세와 같은 사회 환경적 문제 때문에 병력을 늘리는 방향으로 문제를 해결하려는 해군 측의 입장이 설득력이 약하다고 느꼈기 때문이다.

 육군의 설명회 내용이 보도되는 건 더 드물다. 지난해 기자는 서부전선의 전방초소와 포천의 승진훈련장을 방문했었고 2주 전에는 강원도 홍천에 있는 11사단과 과학화전투훈련단을 다녀왔었다. 전방초소에서 육군 관계자는 알려진 것과 달리 최전방 부대에도 야간투시경과 같은 핵심 개인장비조차 부대원 전원에게 지급하지 못하는 상황이라고 소개했었다. 승진훈련장에선 K-11 복합형소총과 같은 첨단 신형무기와 각종 포사격 시범을 보이고 육군의 기계화 수준을 개선하는 것이 시급하다는 취지의 설명을 했었다.

 2주 전 설명회도 11사단이 보유한 전차와 각종 전투장비, 전차훈련 시뮬레이터를 소개한 뒤 병력이 대폭 감축될 예정인 육군의 기계화를 서둘러야 한다고 호소하는 내용이었다. 예컨대 당초 600대를 도입할 예정이던 최신형 K2 전차가 예산 삭감으로 200대로 감축됐다는 것이었다. 이에 따라 낡을 대로 낡은 M계열 전차에 육군 전력이 크게 의존해야 하는 상황이 개선되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다. 국방개혁에 따라 병력이 55만 명에서 38만 명 수준으로 크게 감축되는 육군의 입장에서 기계화 수준을 시급히 높이지 않으면 안 된다는 설명이 뒤따랐다.

 두 차례 육군의 설명회는 육군 무기체계와 군사력 분야의 최고 전문가라는 황종수(예비역 소장) 전력기획참모부장이 이끌었다. 지난해에 이어 올해도 그는 해박한 무기 지식을 자랑하면서 육군 신형 무기 도입의 필요성을 역설하는 데 안간힘을 쓰는 모습이었다. 육군의 전력기획 분야에만 13년을 근무했다는 황 장군은 설명회가 있던 날이 바로 36년 군복무를 마감하는 날이라고 했다. 그런데도 그는 흔들리는 버스에서 선 채로 육군 무기체계의 개선 필요성을 역설하느라 침을 튀기고 있었다.

 기자가 이번에 밀린 숙제를 해야겠다고 마음먹은 건 황 장군의 열정에 자극받은 탓이기도 하다. 왜 군이 별 성과도 없어 보이는 설명회에 이토록 열심일까 궁금해졌다. 예편 뒤 집에서 ‘백수로 지낸다는’ 황 장군을 사흘 전 만나 물었다. “아시다시피 안보 상황은 갈수록 악화하는데 정부 재정지출에서 국방비가 차지하는 비중이 갈수록 줄고 있습니다. 심각합니다”라는 것이었다.

 실제로 2000년 정부예산의 16.3%였던 국방비는 2008년 이후 14%대로 줄었다. 올해는 14.5%다. 국방비 증가율이 정부지출 증가율을 못 따라간 결과다. 워낙 후진적이던 복지 수요가 폭증하면서 상대적으로 국방비 지출이 줄어들 수밖에 없는 사정 때문일 것이다. 그러나 안보 강화는 말로만 외친다고 될 수 있는 일은 아닐 것이다.

강 영 진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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