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4) 호소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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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7면

쳔지가 눈앞에 캄캄하구나! 충무공의「난중일기」를 도둑맞았다는 보도에, 눈앞이 아찔해졌던 그대로, 지금도 내 가슴은 열쇠없는 자물쇠등으로 덜컥하고 잠가버린것만 같다.
백개의 서화 불상을 잃어버린들 이다지야 눈앞이 캄캄하겠느냐. 천점의 고려자기를 도둑맞은들 이렇게야 가슴이 아프겠느냐.
임진란 7년동안, 무수한 피와 눈물이 배고밴 그 종이요, 그 글씨다. 더구나 그 책들은 충무공 한 분의 손때만이 묻어 있는 것 아니다.
그날에 쫓기고, 잡혀가고, 쓰러지고, 숨져간 천만인의 울음과, 아우성과, 한숨과, 흐느낌이 글자마다 들어가 박힌「민족의 성전」인 것이다.
그래 이 몹쓸사람아! 너는 피도 없느냐. 눈물도 없느냐. 조상도 없고 동포도 없느냐. 네가 어느 겨레의 자손이기에 차마 어찌 그같은 일을 저지를 수가 있더냐. 더구나 그것이 혹시 못갈데로 넘어갈까봐 가슴이 졸이구나.
만일 네가 지금 곧 뉘우치지않는다면, 그 책들을 보고 찾아낸 네눈과 손과 발과, 아니 그같은 악한 생각을 품었던 네 가슴에, 천지의 악귀들은 모두 몰려와 무서운 저주를 내릴것이다.
그래 이 미련한 사람아! 네가 끝내 안 잡힐줄 아느냐. 모든 선신(선신)들조차도 너와 너를 심부름시킨 자들의 발 앞에 오늘 저녁 함정을 팔것이요 내일 아침엔「덫」을 놓을 것이다.
그 대신 만일 네가 맑은 양심을 도로찾아 그 책들을 돌려준다면 충무공의 거룩한 혼이 네 머리위에 용서의 손을 얹어 주시리라.
거룩한 영혼은 천년도 가고, 2천년도 가는 법이다. 충무공의 혼백은 사라지지않는 줄 알아야 한다.
부디 돌려다오. 지금 곧 돌려다오. 이 일이 도로 네게 복되는 인연이 될 것이다.
이제 한번 더 호소한다. 너 하나 때문에 우리에게 『피도, 눈물도, 조상도 없는 민족』이라는 무서운 낙인이 찍혀지지는 않게해 다오. 천지 신명이여! 그 책들만은 한장도 상치않게 하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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