③문혁과 동양사상|임어당박사 특별기고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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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4면

모정권이 대륙을 석귄한 이래 18년동안 사실상 조용한 때는 없었다. 모정권의 학정하에 견디지 못한 대륙의 지식인들은 1957년의 소위「명방운동」이후에도 은연중 반항에 반항을 계속하고 있었던 것이다. 모정권은 각가지 방법으로 진압을 해왔으나 완전히 근절할 방법이 없었으며 한편 국제적으로 아주 아주중남미주 등 도처에서 외교상의 실패를 보고 더구나 소련을 포함한 외몽고 인도「네팔」등 인접국가와의 충돌로 외적인 고립과 내적인 불안에 드디어「문화혁명」이란 미명을 붙여 대륙의 지식분자와 당내의 반모세력을 숙청하여 당시 당면한 위기를 미봉하려 했었다.
그러나 그것도 강대한 반항에 부딪쳐 관철이 불가능하게 되자 다시「홍위병」이란 이름으로 철부지한 청소년을 동원하여 전 대륙에 걸쳐 난동을 일으키게 했다. 그 결과「홍위병」은 일반 민중의 반감을 사게되고 도처에서 지방민병과 충돌하여 각지방에서 유혈극을 야기케 되었다.
홍위병의 난동은 지방의 반모세력을 더욱 확대, 공고하게 만들었을 뿐만 아니라, 어떤「홍위병」대 (예, 연안·호남) 는 지방민병과 합세하여 오히려 북평에서 파견되어온 친모파 홍위병과 충돌을 하게되어 최후로 군사를 동원하여 지방 반모세력을 진압해야할 정도에 이르렀다.
그러나 뜻밖에도 군연동원은 섶을 쥐고 불에 뛰어든 격이 되었다. 각지방군대는 중앙의 명령에 응하지 않을 뿐만아니라 중앙엔 모·임파(또는옹모파) 와 유소기를 중심으로 한 반모파와의 암투가 격심해 지고 지방은 곳곳마다「홍위병」「민병」「군대」가 옹모파와 반모파로 분리되어 유혈충돌이 그치지 않고 있다. 천진과 같이 중앙에 가까운 대도시엔 임표의 군사가 파견되어 탈권에 급급하고있지만 청해·신강·감숙·서강 같은 변방지방은 반모파에 의해 장악된 지방도 적지 않다.
최근의 보도에 의하면 모정권은 최후로 경찰권의 장악을 위하여 10월께 중공의「공안부대」를 당의 직속하에 둠으로써 유소기의「혁명위원회」가 경찰권을 탈취할 것을 막고 있다하는데, 지금 부총리겸 안전부장의 직을 맡고있는 사부치가 어느 정도까지 순순이 모정권의 지시에 응할지가 의문이다. 모정권은 중공최고권력인 경찰권을 완전장악하기 위해서는 좀더 측근자를 택하여 중임을 맡길지도 모르는 일이다.
이상 말한 중앙정부에 반항불응하는 지방군벌을 통칭하여 반모파라고 하지만 사실은 반모파가 서로 무슨 연락관계나 계통적인 유대관계를 유지하고 있는 것은 아니라고 본다. 현재의 중국대륙은 다소 시기상조의 이야기가 될지 모르지만 중국역사에서 되풀이하는 통일에서 분열로 들어가는 시기가 아닌가 생각한다. 즉 사실상은 주말의 춘추전국시대 청말에 군벌시대와 같이 군웅할거의 시대가 도래하지 않았나 생각된다.
모정권은 이미 인심을 잃었다. 국내의 혼란한 백성의 정권하에서의 이탈이요,「유엔」서의 지지표수가 감소한 것이나 한동안「아시아」의 쿠바라고까지 말하던 인니와 국교가 단절된 것은 모두 국제적인 인심이 역시 멀어졌음을 말한다.
이러한 국제적인 고립은 외부에 원인이 있는 것이 아니고 모정권 자신이 저질러만든 것이다.
최근 보도에 의하면 복건성이 드디어 혼란에 휩쓸려 들어갔다. 대륙혼란은 처음 광동에서 시작하여 변방지방까지 전파되어 무환·천진 등의 대도시들이 유혈충돌로 대혼란을 계속한데도 해안지방의 제성은 비교적 안정을 유지하고 있었다. 그러나 드디어 복건생에서도 북평에서 파견된 모파의 5명의 사자가 체포되고 복건일보가 북평에 발송되지 않는 등 수 개월 전에 무한에 발생했던 것과 유사한 혈투가 벌어지고 있다고 한다. 이와 갈은 보도가 사실이라면 나는 군사전문가는 아니지만 대륙의 해안제성의 혼란은 우리에게 유리한 전략조건을 만들어 주는 것이 아닌가 생각한다. 그러나 이러한 사건이 곧 극동정세를 긴장케 할 정도로 발전할지는 의문이며 앞으로 1년을 더 관망해 봐야겠지만 대륙의 내부는 더욱 혼란해질 것으로 믿는다.
한편 동양문화를 말한다면 우리 동양인들도 자신을 찾고 우리들의 문화에 자부심을 가지고 맹목적인 서양숭배를 지양해야한다. 물론 천문학이 어느 단일국가의 학문이 아니고 세계적인 학문인 것처럼 어떤 부분은 세계의 수준을 따를 필요가 있지만 모든 고유문화까지 망각하고 타에 기준을 둘 필요는 없다. 동양인은 서양인과 다른 문화를 가지고 있음을 자부해야한다.
또 동양문화에 중 한 일과 같이 서로를 일관하는 사상의 기초가 있으면서 한국민족은 한국민족대로, 중국은 중국민족대로 서로 다른 특성을 계속 유지하고 있어야 그 사회는 더욱 발전해 나갈 수 있는 것이다.
동양3국을 일관하는 사상으로 유가사상이있는데 유가사상이 종교의 형성과는 좀 다르지만 그 사상은 종교와 같이 깊이 민심에 영향을 주어 유사이래 어느 종교사상 보다도 큰 사회를 장구한 시일동안 지배하고 있다. 『공자는 그의 정치사상을 정사에 중점을 두지 않고 소위「위정」「치국」의 모든 힘을, 그보다 한층 고상한 풍속을 개선하고 사회질서를 유지하는 윤리행위에 기울었다.』
법률로 치국하지 않고 예속으로 치국해야한다. 그리고 사실상 공자의 사상은 중국뿐 아니라 위문과 일본까지도 포함하여 오늘날까지 우리사회와 가정을 도배하고 있다. 그러나 한국엔 한국의 특성이 있고 중국엔 중국의 특성이 있기 때문에 우리는 각각 다른문화민족으로서 존재할 수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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