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동네에 살고 지고…] (22)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24면

아. 사랑이여, 귀중한 울음을 바치고
이제는 바꿀 수 없는 노래를 찾는가 -박재삼

나라에서 으뜸의 기술을 가진 사람을 국수(國手)라고 한다. 문학동네에서는 이 명예로운 이름을 얻은 이가 오직 한 사람 있으니 시인 박재삼(朴在森)이다. 바둑을 잘 두어 오랫동안 국수 자리를 지켰던 조남철이 박재삼을 박국수로 불렀다.

당시만 해도 바둑이 3급 정도면 아마추어로서는 강자이기도 했지만 그보다는 박재삼이 1960년대 후반부터 서울신문이 주최한 '패왕전'의 관전평을 쓰면서 바둑동네의 큰 식구가 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박국수라는 호칭만 듣고 모르는 이들은 문단바둑의 최고수인 줄 아나 바둑 서열로는 한참 아래였던 것이고 시의 서열로는 국수로 불릴 만하다는 것이 내 속마음이었다.

박재삼은 1933년 일본 도쿄(東京)에서 태어나 네 살 때 어머니의 고향인 삼천포로 돌아온다. 시인의 길로 들어서게 된 것은 삼천포 중학에 입학하면서 국어선생 김상옥을 만나면서다. 김상옥은 가람.노산.조운 이후에 이 나라 시조의 새 물결을 일으킨 시인이다.

큰 스승을 만나 시조의 가락을 어려서 익힌 박재삼은 중학생 때 제1회 영남예술제(뒤에 개천예술제로 바뀜)에서 시조 '촉석루'가 차상으로 뽑혔고 53년에 '문예' 11월호에 시조 '강물에서'가 모윤숙에 의해 추천된다.

서울에 올라와 54년에 '현대문학'창간 사원으로 입사한다. 그는 시조에서 익힌 운율을 자유시로 철철 넘치게 튕기면서 미당이 해냈던 것, 그 다음의 시의 넝쿨을 치켜들고 있었다.

"제삿날 큰 집에 모이는 불빛도 불빛이지만/해질녘 울음이 타는 가을 강을 보겠네" 많은 사람들이 애송하는 시 '울음이 타는 가을강'도 뉘라 그 솜씨를 따를까마는 나는 아무래도 박재삼의 시조에 더 홀려있고 그 가운데서도 '내 사랑은'앞에서는 오금을 못펴고 있다.

"몸으로 사내 장부가 몸으로 우는 밤은/부연 들기름불이 지지지 지지지 앓고/달빛도 사립을 빠진 시름갈래 만갈래" 자유시로는 차마 다다르기 어려운 높은 음절이 여기서 터져나온다. 나는 당돌하게도 박재삼 앞에서 몇 번인가 "당신의 자유시집 열 권과 이 시조 '내 사랑은'을 바꾸지 않겠다"고 했다.

바둑에 마악 눈이 떠서 겁없이 문단고수들에 대들던 67년 나는 그가 일하는 대한일보사 숙직실에서 밤을 꼬박 새우며 바둑을 두기도 했다.

신춘문예심사도 둘이서 열번을 넘게 했었고, 시골 아저씨 생김의 마음씨 좋은 박국수는 시만 국수가 아니라 술과 노래도 국수급이어서 한 번은 청와대에서 박목월의 심판으로 박정희 전 대통령과 '짝사랑'노래 대결을 벌인 일도 있었다.

술탓이었을까. 마흔도 안되어 고혈압으로 쓰러졌다 일어나서 끄떡없이 시를 쓰고 큰 상도 많이 타더니 끝내 자리에 누워 97년 6월 혼자만의 아름다운 가락 못 다 푼 채 돌아오지 못하는 강을 건너갔다. 영결식에서 나는 그의 시에 어림도 없는 조시를 읽었다.

"당신이 들에 나가면 꽃들이 먼저 웃고/당신이 산에 오르면 새들이 먼저 노래하고/당신이 바다에 이르면 고기떼가 물장구를 치며 반겼습니다."

이근배 <시인.한국시인협회장>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