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고정애의 시시각각

대통령 사당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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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4면

고정애
논설위원

“너무 부럽더라.” 지난달 말 조지 W 부시 전 미국 대통령 기념관에 다녀온 김효재 전 청와대 정무수석의 말이다. 그는 이명박 전 대통령과 함께 기념관 개관식에 참석했었다. 그의 얘기는 이어졌다. “부시 전 대통령의 부인인 로라 부시가 도서관 사서 출신인데 총지휘했다고 하더라. 자료가 체계적이었다. 부시 시대에 대해 아주 객관적으로 볼 수 있었다.” 동석했던 이달곤 전 정무수석도 “어떻게 해석할지 관람객에게 맡겼더라”라고 했다.

 부시 전 대통령 스스로도 기념관을 두고 “정책을 설명하는 곳이 아닌 사실을 펼쳐놓는 곳이다. 나를 방어할 필요는 없다. 내가 했던 일은 내가 했던 일이다. 궁극적으로 역사가 평가할 것”이라고 했다. 실제 그 예로 기념관의 ‘결정적 순간(decision points)’이란 코너가 왕왕 거론된다. 거기에선 이라크 침공 등 가장 비판받는 사안을 관람객에게 제시하며 당시 상황에 대해 이런저런 정보를 제공한다. 그러곤 대통령이라면 어떤 선택을 하겠는가 묻는다. 관람객이 탐구·평가하게 한 거다. 역사로부터 배우기다.

 우리네 대통령 기념관은 어떤가. 찬반 논란 끝에 2011년 문을 연 서울 상암동의 박정희 기념도서관을 찾아갔다. 국가 발전상이 압축 전시돼 있었다. 그러나 그곳엔 당시 민주화운동이 생략돼 있었다. 박 전 대통령이 어떻게 서거했는지 하는 사실도 증발됐다. 실패의 씁쓸함도 없었다. 1962년 화폐개혁을 한 달여 만에 백지화할 때 박 전 대통령이 눈물을 글썽거렸다는데, 그런 사실을 상상하기 어려웠다. 그저 성공, 성공, 또 성공 스토리뿐이다.

 그곳으로부터 5㎞쯤 떨어진 동교동의 김대중도서관도 역시나였다. ‘아시아 최초의 대통령 도서관’을 표방하지만 ‘일방적’이란 면에서도 아시아 최초일 듯했다. 그곳의 DJ는 ‘빛’만 있고 ‘그림자’는 없는 대통령이었다.

 미국의 대통령 기념관을 두고도 “대통령 사당(祠堂)”이란 비판이 있긴 하다. “전직 대통령이 역사를 고쳐 쓰는 수단”(『퇴임 후로 본 미국 대통령의 역사』)이란 쓴소리도 듣는다. 미국의 경우 전직 대통령이 모금해 기념관을 건립하고, 국가(국가기록원)에 봉헌하는 구조여서다. 부시 전 대통령은 5억 달러를 모금했다. 전직 대통령과 가족, 지지자들의 발언권이 셀 수밖에 없는 이유다. 그래도 부시 전 대통령이 이라크 침공, 빌 클린턴 전 대통령은 성추문 사실을 포함시켜야 했다. 리처드 닉슨 대통령 기념관도 수십 년간 버티다 끝내 워터게이트 사건을 다루어야 했다. 국가기록원이 국민의 돈을 들여 기념관을 관리하는 사이 기념관은 점차 공평무사해졌다. 말 그대로 공공도서관이 된 거다.

 우린 그럴 만한 유인책이 없다. 건립 단계에서 혈세가 들어가긴 한다. 민간과 정부가 함께 돈을 내는 구조여서다. 박 전 대통령과 DJ 측에 각각 208억원과 75억원, 상도동에 건립 중인 김영삼도서관에도 75억원이 투입됐다. 하지만 그걸로 끝이다. 사실상 연계는 없다.

 그 결과물이 지금의 기념관들이다. 지지자가 아닌 사람이 일방적으로 발췌된 사실에 공감하겠는가. 과정은 없고 결과만 있는데 후손이 배울 수 있겠는가. 모두 아니다. 지지 또는 반대를 확인하는 데만 적합할 뿐, 탐구도 배움도 사라진 공간일 뿐이다. 명실상부한 ‘사당’인 거다.

 장차 대통령 기념관은 만들어져야 하고 또 만들어질 거다. 번듯한 이승만 기념관도, 전두환·노태우 기념관도 있어야 한다. 그러나 기존 기념관들이 이처럼 편향적이어서야 “혈세를 투입하자”고 국민을 설득할 수 있을까. 당대의 평가가 부당하게 느껴지더라도 전직 대통령들과 가족, 또 지지자들은 통합적인 역사 인식을 보여야 한다. 그래야 반대편도 누그러지지 않겠는가. “불타는 반항심 때문이든, 아니면 비굴함 때문이든 후세의 귀감이 되도록 역사를 쓰는 배려가 사라졌다”는 타키투스의 개탄이 멀리 있지 않았다.

고정애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