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방의 위문 편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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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이곳으로 후송되어 온 지도 벌써 수개월이 되었나 보다. 창 너머 병원 뜨락의 눈발이 차갑다. 갑자기 오싹해지는 건 전방생활의 자그만 지속감 때문일까? 작년 봄 그러니까 졸업 하기가 바쁘게 군 문으로 내달았던 혈기 찬 몸은 뜻하지 않은 부상에 심한「브레이크」에 걸리고 말았다.
○…한번씩은 거쳐야할 제복의 관문, 세모가 다가오니 한층 그들이 생각난다. 병상의 하루는 지루하다. 그러나 모진 추위 속에서 근무하고 있을 그들에 비기면 이건 사치스런 말일지도 모르겠다. 연말을 그런 대로 포근한 병상에서 넘기자니 하나의 죄책감 같은 것이 나를 사로잡는다. 지금쯤 흰눈 덮인 어느 고지에서 얼어오는 손발을 코닥거릴 동료 전우들의 모습이 눈(설) 발 위에 서려온다.
○…얼어붙은 이들의 심신을 포근히 녹여줄 따뜻한 위문 엽서라도 보내야겠다.
○…마음으로 쓴 위문편지가 하늘과 흰눈에 덮인 산과, 때때로 제풀에 푸득 거리는 까투리소리뿐인 일선고지의 장병에게 어떤 역할을 하는가를 알고 있기 때문이다. 어떤 시골 처녀가 정성 담아 써보낸 편지를 접은 곳이 헤어지도록 「바이블」처럼 잠들기 전에 읽고 있던 키다리 K장사의 모습. 훈훈한 병실에서 나는 왜 이토록 뼈 속이 저려오는 것일까. <김세영· 25· 군우157제1육군병원9병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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