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공이라는 당위의식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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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동백림을 거점으로 한 대남적화공작단 사건」의 첫 판결이 어제 내려졌다. 관련자의 수효와 그 사회적 신분, 유죄로 판시된 죄질과 그 형량에 이르기까지 모두 문자그대로 「건국 후 최대의 정보사건」답게 이 사건은 이로써 그 첫 단락이 지어진 셈이다. 지난 7월8일, 김 중앙정보부장에 의하여 첫「진상발표」가 있은 지 꼭 1백58일만이요, 7월22일의 제1차 기소 후 1백49일째, 그리고 국내외의 시청을 모은 가운데 첫 공판이 개정된 지 만 34일만의 일이다.
그 동안의 심리과정과 판결문에 적시된 판시이유 등을 통해 느끼는 국민의 솔직한 감회는 무엇보다도 엄숙할이만큼 냉혹한 조국의 현실에 대해 저절로 머리가 수그러지지 않을 수 없다는 사실이 아닐까 싶다. 「반공」이라는 우리 앞에 주어진 정언명령적인 과제는 같은 국토분단이라는 민족적 비애를 씹고있는 독일과도 또 다르며, 하물며 공산침략의 직접적인 위협이 없는 서구제국이나 일본의 경우와는 더군다나 사정이 다르다. 수단·방법을 가리지 않고 오직 한반도전역의 적화를 위해 온갖 도발행위를 서슴지 않고 있는 북괴의 침략위협을 직접 피부로 느끼고있는 우리의 반공은 학문·예술에는 국경이 없다는 낡은 추상론이나 한낱 이론적 설명을 초월하여 피맺힌 운명공동의식을 체험했을 때만 비로소 체감할 수 있는 당위의식임을 다시 한번 깨닫게 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이런 상황하에서 설정된 한국인들의 독특한 반공적 자세를 외국인이나 오랫동안 국토를 떠나 사는 「코스모포리탄」적 일부 지식인들이 마치 자기들과는 무연의 것이나 되는 것처럼 착각하게 됐다면, 이는 그 개인의 망발·불행에 그치지 않고 적어도 우리국민의 입장에서는 역사에 대한 도전이라고 볼 수밖에 없는 것이다.
이번 사건에 관련된 대부분의 인사들이 세계적 수준에 비추어 볼 때에도 높은 평가를 받음직한 명성과 촉망을 한 몸에 지녔던 사람들임을 상기할 때, 우리는 이제 이들에게 내려진 무거운 형벌이 이처럼 한국지성인에게 과해진 엄숙한 의무로부터의 이탈을 책하는 응보라 생각하지 않을 수 없음을 슬퍼한다. 그러나 이들에게 과해진 무거운 멍에는 동시에 어떤 의미에서는 그것을 한국의 지성인 전체가 함께 나누어 짊어져야 할 민족적 비극의 일단면이라는 것을 또한 깨닫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이 사건은 아직 최종적으로 완결된 것이 아님은 물론 이 사건으로 말미암아 몇몇 우방국가와의 사이에 야기된 외교문제의 귀추에 대해서도 우리는 깊은 관심을 가지고 주시하고자 한다.
기결·미결을 포함하여 관련인사의 대부분이 저명한 학계·언론계·문화계 인사들이라는 사실 때문에 이번 공판과정에서 본바와 같이 국내는 물론 멀리 국외에서까지 많은 관심이 집중되고 있을 뿐 아니라 이 때문에 국민의 경악과 불안감이 아직도 가시지 않고 있는 만큼 정부는 이와 같은 문제의 소재에 대하여 깊은 성찰과 명확한 태도표명이 있어야할 줄로 안다. 1심 판결의 선고를 들으면서 우리는 이번 사건이 다시 한번 우리의 반공자세를 가다듬는 계기가 되기를 충심으로 바랄 뿐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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