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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통위, 훈장님 노릇에 만족할 것인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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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7면

심서현
경제부문 기자

사법연수원생 손모(28)씨는 한 이동통신 판매점과 3개월간 실랑이를 벌였다. 6개월 전 이 판매점의 직원은 “3개월 쓰면 이전 기기 할부금과 위약금을 계좌로 보내주겠다”며 가입을 권했다. 그러나 가입 뒤 아무 소식이 없어 판매점을 찾았더니 “해당 직원은 그만뒀고 우리는 모르는 내용”이라는 답만 들었다. 다행히 손씨는 계약서 원본을 찾아 당시의 필기 메모를 확보하고 법적 지식을 동원한 덕에 약속한 돈을 받았다.

 국내 이동통신업계는 가장 치열한 시장이다. SK텔레콤·KT·LG유플러스 등 이통 3사들은 고객을 한 명이라도 더 많이 늘리기 위해 막대한 보조금을 쏟아붓는다. 지난 1분기 이들 3개 업체가 투입한 마케팅 비용은 총 2조543억원으로, 회사별로 1년 전보다 20~39%씩 늘었다. 이렇게 보조금을 썼는데도 LG유플러스 외에는 가입자가 줄고 전년 대비 영업이익도 뒷걸음쳤다.

 소비자들은 속아 사지 않으려고 애쓴다. 일부 영업점에선 여전히 요금에서 깎아주는 약정할인금을 단말기 보조금인 것처럼 속여 판다. 100만원에 가까운 기기값을 다 내면서도 공짜폰 산 줄 아는 소비자가 중년층에 특히 많다. “위약금 대신 내 드린다”고 약속했다가 해당 판매원이 사라지거나 아예 점포가 문을 닫는 경우도 부지기수다.

 이 모두가 방관에 가까운 방송통신위원회의 보조금 단속 정책 때문이다. 방통위가 들이미는 잣대는 단 하나, 바로 법정 보조금 상한선(27만원)뿐이다. 이 상한선은 스마트폰이 나오기 전인 2008년 만들어졌다. 보조금이 이보다 높아지면 훈계에 나선다. 지난달 말 보조금이 올라가자 방통위는 이통3사의 임원을 소집해 “그러지 말라”고 경고했다. 그러고는 다음 날 보도자료를 냈다. “경고 하루 만에 평균 보조금이 26만5000원에서 24만3000원으로 내려갔다”는 것이다. 훈계의 성과를 자축하는 사이, 소비자는 여전히 꼼수와 거짓말에 당하고 있다.

 불만의 목소리가 높아지자 방통위는 새 정부 들어 ‘보조금 과열을 주도한 사업자만 중징계하겠다’는 방침을 내놨다. 하지만 전국 모든 곳을 살피는 것도 아니고 기간마저 방통위가 임의로 정한다. 이런 탓에 단속 때마다 업체들의 반발만 사고 있다. 급기야 미래창조과학부까지 나서 보조금 액수를 홈페이지에 알리고 보조금 차별 지급을 금지하는 내용의 새 법안을 이달 중 내겠다고 밝혔다. 하지만 이런 공식 보조금은 지금도 있다. 다만 일선 영업망에서 지켜지지 않을 뿐이다.

 이제부터라도 법칙을 바꿔야 한다. 우선 2008년에 정한 보조금 상한선 규정부터 현실에 맞게 손질해야 한다. 스마트폰은 이전 피처폰에 비해 40~60%나 더 비싸다. 방통위가 과거의 보조금 잣대와 형식적인 단속을 고집한다면 이통사의 출혈 경쟁과 고객들의 피해는 끝없이 되풀이될 뿐이다.

심 서 현 경제부문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