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北송금 의혹 핵심들] 낯 뜨거운 말 바꾸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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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북 2억달러 송금이 사실로 드러났는데도 핵심 관련자인 청와대.국가정보원.현대 등이 사건의 전말에 대해 일제히 '모르쇠'로 일관하고 있다. 이에 따라 의혹은 더욱 증폭되고 있다.

그러나 이들의 발언에는 미묘한 변화가 있다. 지난해 국회에서 처음 의혹이 불거졌을 때만 해도 이들은 "대북 지원은 없다"고 강력히 반발했다. 그러다가 지난달 30일 감사원의 감사 결과가 발표된 후부터는 "노 코멘트" "모른다"고 발을 빼는 모습이다. 상당수는 아예 기자와의 접촉을 피하거나 인터뷰 요청을 거부하고 있다.

의혹의 한복판에 있는 박지원(朴智元)대통령 비서실장은 함구 중이다. 그는 지난해 국회 운영위에서 "북한에 단 1달러도 주지 않았다"고 증언한 것을 문제삼은 한나라당으로부터 위증죄로 검찰에 고발하겠다는 압박을 받고 있다.

朴실장은 설 연휴 동안 서울 삼청동 비서실장 공관에 머물며 휴식을 취했고 3일 정상 출근했다. 그러나 외부 행사 참석 중이란 이유로 끝내 접촉할 수 없었다. 한 측근은 "대통령이 말을 했는데 朴실장이 더 무슨 말을 하겠느냐"며 "당시 국회 발언은 '정부 차원에서 지원하거나 찔러준 게 없다'는 취지였다"고 전했다.

임동원(林東源.전 국정원장)외교안보통일특보도 감사원 발표 직후 "노 코멘트"란 입장을 밝혔을 뿐 언론과의 접촉을 끊고 있다. 林특보는 대북 송금.환전 과정에서 국정원이 주도적 역할을 했다는 의혹과 관련해 주목을 받고 있다.

당시 청와대 비서실장이었던 민주당 한광옥(韓光玉)최고위원은 "내가 말할 수 있는 건 모른다는 것"이라고 했다. 韓위원은 그러나 이날 송금 파문 대책을 논의하기 위한 최고위원회의에 불참했다. 韓위원은 "최근 백내장 수술을 받아 외부 활동을 삼가고 있을 뿐 특별한 의도가 있는 건 아니다"고 해명했다.

이기호(李起浩)경제복지노동특보는 현대와의 교감설을 "음해"라고 몰아붙였다. 그는 기자와의 통화에서 "나는 모든 사람의 비난을 받으면서도 현대에 강도 높게 자구계획을 요구하는 등 현대를 죽이는 데 앞장섰던 사람"이라며 "(현대를) 조금도 봐준 적이 없다"고 반박했다.

현대상선의 대출 과정에 관여한 산업은행이나 금감원 책임자들의 발언도 바뀌었다. 대출 당시 산업은행 영업본부장이었던 박상배 부총재는 처음엔 "현대의 유동성 문제 때문에 대출했다"고 주장하다가 지난달 기자들과 만나 "계좌추적을 하면 금방 밝혀지겠지만 끝까지 파헤쳐 과연 누구한테 도움이 되겠느냐"며 " 국익에 도움이 되나 따져봐야 한다"고 말했다.

이근영 금감위원장(당시 산업은행 총재)은 처음엔 "대출은 본부장 전결"이라며 자신의 무관함을 주장했다가 "박상배 부총재의 보고를 받고 대출해준 기억이 난다"고 한 뒤 최근에는 아예 인터뷰 요청을 거절하고 있다.

사건의 당사자인 현대의 해명은 더 오락가락한다. 정몽헌 현대아산 회장은 지난해 문제가 터지자 "4천억원 대북 송금은 있을 수 없다"고 했다가 지난달 13일엔 "유동성 문제로 빌렸던 돈이며 다 갚았다"고 했다. 그리고 22일엔 "아는 바 없어 뭐라고 말할 수 없다"고 말을 바꿨다.

감사원 발표 직후 현대상선은 "개성공단 사업과 관광.철도사업 등 7개 대북 협력사업에 그 돈을 썼다"고만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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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광기.이정민.박승희 기자 <kikwk@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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