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식 해조류 씨앗 80%가 외국산

온라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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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목포의 국립수산과학원 박은정(38·여) 박사는 ‘해조류의 어머니’로 통한다. 국내에 몇 안 되는 해조류 전문가다. 일본에서 수산학으로 박사학위를 받고 국립수산과학원에 합류한 이래 줄곧 김·미역·다시마 같은 해조류 연구에만 매달렸다. 그의 임무는 국산 토종 해조류 종자(種子)를 만들어내는 일이다. 병충해에 강하고 생산성이 좋은 해조류를 발견해 키우거나(선발 육종), 이를 인공적으로 만들어내는(교잡 육종) 것이다.

그가 몸담은 해조류바이오연구센터는 국내 유일의 해조류 종자은행이다. 총 163종(김 121종?미역 21종? 기타 21종)의 계통주를 갖고 있다. 품종이 같은 참김이라도 진도산과 완도산이 다르다. 해조류 서식 지역에 따라 각기 다른 계통주로 친다. 김 양식 선진국인 일본에는 총 1000여 종의 계통주가 있다.

그런 그가 요새 부쩍 바빠졌다. 지난해 1월부터 국내에서 발효된 ‘국제식물신품종보호동맹(UPOV)’ 때문이다. 김과 미역을 비롯한 해조류 종자의 소유권을 가진 국가가 절차를 밟아 권리를 주장할 경우 로열티를 지급해야 한다. 국내에서 한 해 양식되는 해조류는 90만t가량이다. 이 가운데 80% 이상이 일본산에 뿌리를 두고 있다. 다시마는 중국 종자가 대부분이다. 아직까지 일본은 로열티 요구를 하지 않고 있다. 상황이 달라지면 우리 양식농가는 일본과 중국에 거액의 로열티를 물어야 될 판이다.

문제는 최근 김을 중심으로 미국과 유럽으로의 수출량이 늘고 있다는 점이다. 그만큼 일본·중국이 로열티를 요구할 가능성이 더 커진 셈이다. 지난해 90억원어치의 조미김을 미국에 수출한 CJ제일제당은 올해 목표를 150억원 이상으로 늘려 잡았다. 또 지구 온난화와 양식장의 증가로 바다 환경이 악화되면서 병충해와 열해(熱害)에 내성이 강한 해조류 개발 필요성도 커졌다. 해조류가 바이오산업?의약용 소재 등으로 쓰임새가 많아지고 있어서다. 수산업계에선 전 세계 해조류 관련 산업규모가 머잖아 연 10조 달러대로 커질 것으로 본다.

한·중·일 삼국 간 해조류 종자주권을 둘러싼 치열한 개발 경쟁의 막이 오르고 있다. 국내 유일의 해조류바이오센터는 2015년까지 15품종의 김과 미역을 새로 개발하는 게 목표다. 현재 양식 해조류 중 20% 미만인 토종 종자 비율을 90% 선까지 끌어올린다는 것이다.

상황은 녹록지 않다. 라이벌인 일본은 1980년대부터 해조류 품종 개량을 위한 연구를 국책 과제로 활발히 진행해 왔다. 김 종자를 연구하는 인력만 해도 80여 명에 달한다. 반면 우리나라에는 박 박사를 포함해 3명이 전부다. 대학에도 해조류와 관련한 제대로 된 교육과정이 없다. 일본이나 미국에서 공부하는 게 일반적이다. 해조류 양식량은 세계 4위인데 정작 종자는 8할이 외국산인 형편이다. 해양강국인 일본과 중국에 맞서야 할 그녀에게 주어진 예산은 연 2억5000만원가량. 그나마 지난해보다 두 배 가까이 늘어난 것이다.

세계 최대의 해조류 양식대국인 중국은 특히 다시마에 경쟁력이 있다. 60년대부터 다시마 연구에 집중해왔다. 생산성이 높고 병충해에 강한 다시마 품종을 10개 이상 갖고 있다. 한국의 12배, 일본의 25배를 넘는 해조류 양식량(2010년 기준으로 약 1109만t)을 앞세운 가격경쟁력도 중국의 무기다. 박 박사는 “중국의 진짜 경쟁력은 어떤 연구가 얼마만큼 이뤄지고 있는지 다른 나라에서 거의 아무것도 알지 못하는 점”이라며 “다시마를 비롯한 중국산 해조류의 품질을 볼 때 수준이 만만치 않다”고 말했다.

우리나라가 해조류 연구 후발주자지만 희망은 있다. 정부는 이달부터 종자 주권 강화를 위한 ‘골든 시드 프로젝트(Golden Seed Project)’ 지원연구단을 모집한다. 다음 달부터 본격적인 종자 연구개발에 착수한다는 것이다. 이 프로젝트는 ‘금처럼 귀한 각종 종자를 개발해 종자 주권을 확보하자’는 취지다.

육상과 수상의 19개 대상 작물 중 해조류인 김이 포함돼 있다. 박 박사는 “우리나라의 해조류 양식기술은 세계 최고 수준이라 지금부터라도 체계적인 연구를 한다면 일본·중국에 밀리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목포=이수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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