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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존러쉬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1면

서울의 교통인구가 하루 3백73만명이라는 사실은 말만 들어도 숨이 가쁘다. 대구 전시민의 3배를 넘는 수자이다. 좀더 실감을 느끼려면, 경남과 제주의 전도민이 온통 쏟아져 나오는 수에 적어도 20여만명을 더 보태야 하는 경우를 상상하면 된다. 이들의 교통기관은 한결같이 3등 「버스」아니면 좌석·급행「버스」이다.
교통「러쉬」는 어느 나라 도시에나 있기 마련이다. 「뉴요크」, 「런던」, 「파리」의 「러쉬」는 그중에서도 세계적이다. 그러나 우리와는 근본적으로 사정이 다르다. 영국의 경우, 자동차의 보급율은 도로10미터에 한 대씩이다. 「런던」의 도로가 아니라, 이경우는 국내 전도로위에 자동차를 진열하면 10미터마다 한 대씩 된다는 이야기다.
그런 나라에서의 「러쉬」는 우선 자동차가 움직이기 힘들다는 뜻이다. 우리처럼 「공격적인 승차」를 두고 하는 말이 아니다. 미국의 경우, 자동차의 보급댓수는 약1억대. 이중의 50%가 도시에 집중해있다. 그 나라의 국민들은 자동차속에 앉아서 전전긍긍 「러쉬」병을 앓아야 하는 것이다.
미국 「디트로이드」시는 교통「러쉬」속에서 만들어진 전형적인 현대도시이다. 전도시면적의 26%가 도로이고, 60%가 주차장이다. 나머지 14%의 면적위에 주택도서고 「빌딩」도 서있다. 이경우는 사람이 사는 도시가 아니라 철두철미 자동차가 사는 「기계의도시」인 것이다.
서울도 교통인구로 보면 「버스」의 도시이다. 「버스」한대당 평균 2천10명의 손님을 태운다. 승객의 입장에서 말하면 매달려 가는 것이다. 「버스」에 발을 붙이게 된것만도 감사할 지경이다.
이런 수라장속에서 운수관리들은 무슨일을 하는가. 최근의 「버스」조합 수회사건들은 충격적이다. 그들은 자동차업주들과 결탁이나하고, 시민들을 괴롭히는 일에 태연히 「협조」하고 있는 것이다. 시민들은 배신당한 분노마저 감출수 없다. 교통인구 3백73만명을 거느린 시당국은 이권과잉에 쾌재나 부를것인가. 3백73만명이 1분씩을 지체할 때 그시간은 2천6백일로 환산된다. 아니, 그들의 생명은 무엇으로도 계산할 수 없는 것이다. 교통「러쉬」의 문제는 바로 인간 생존의 문제라는 것을 관리들은 아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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