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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말라야 14좌 베이스캠프를 가다 <11> 가셔브룸1봉과 2봉 (상)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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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셔브룸(Gasherbrum)은 파키스탄 카라코람(Karakoram)히말라야를 관통하는 발토로(Baltoro) 빙하 끝에 있다. ‘더는 갈 수 없는 세상의 끝’에서 맛보는 카타르시스가 있는 길이다.

가셔브룸1(8068m)과 가셔브룸2(8035m)는 불과 5㎞ 간격을 두고 마주 보고 있어 베이스캠프(5150m) 위치가 같다. 가셔브룸은 K2(8611m)로 가는 관문인 콩코르디아(Concordia·4700m)에서 이틀 거리였다.

아브루치빙하에 땅거미가 깔리고, 가셔브룸1(가운데)이 신비로운 모습을 드러내고 있다. 가셔브룸2는 뒤에 숨어 있어 꼭대기만 살짝 보인다.

여름 한철만 열리는 길 … 그나마 예측 불허

가셔브룸은 거대한 산군(山群)이다. 각각 세계 11, 13위 봉우리인 가셔브룸1봉과 2봉말고도 주변에 7000m를 넘는 산이 수십여 개에 달한다. 베이스캠프(이하 BC)에 들어서면 마치 거대한 불상이 늘어선, 인간 세상이 아닌 또 다른 세계에 들어온 느낌이다. 평소 신의 존재를 믿지 않은 사람조차도 이곳에 서면 자신도 모르게 신을 찾게 된다. 자연에 대한 경외심은 숫제 상투적인 표현이 되고 만다.

‘여기가 세상의 끝이 아닐까’라는 생각을 하는 순간 ‘저 산 너머에 무언가가 있을 거야’라는 또 다른 생각을 하게 된다. 가셔브룸 산군 북쪽은 티베트 고원, 서쪽은 인도 카슈미르 지역이다. 헬레나 노르베리의 『오래된 미래』로 잘 알려진 라다크가 카슈미르 지역에 있다.

가셔브룸은 ‘빛나는 벽’이라는 뜻이다. 쌍벽을 이루는 봉우리 중에서 가셔브룸1은 ‘히든피크(Hidden Peak)’라는 애칭이 붙어 있다. 1892년 영국 탐험가 윌리엄 콘웨이가 이 지역을 탐사할 때 주변 봉우리에 가려 있는 가셔브룸을 가리켜 붙인 이름이다. 본격적인 탐사는 1902년 K2에 처음 등반 루트를 설계한 이탈리아의 아브루치 대공에 의해 이뤄졌다. 그는 K2로 들어가는 관문인 콩코르디아에서 나와 북으로 방향을 튼 다음 빙하 깊숙이 들어갔다. 그의 이름을 따 이곳을 ‘아브루치 빙하’로 부른다.

콩코르디아에서 가셔브룸 BC로 가는 길은 여름 한철에만 열린다. 그마저도 예측할 수 없는 길이다. 볕이 쨍하고 내리쬘 때는 발바닥 아래서 빙하 갈라지는 소리가 쩍쩍 들리다가 구름이 몰려오면 이내 진눈깨비를 뿌린다. 운수 사나운 경우에는 일주일 내내 눈을 맞기도 한다.

지난해 여름 발토로 빙하는 유난히 눈이 많았다. BC로 가는 길은 ‘얼음밭 두렁’이다. 빙하는 반듯하게 흐르지 않으며, 사나운 눈사태가 지나간 것처럼 수십 갈래의 이랑을 만들어낸다. 녹고 얼기를 반복하는 빙하 밑동은 푸르디 맑은 ‘청빙(淸氷)’, 그 아래는 얼음이 녹아 흐르는 강이다. ‘얼음 강’은 봅슬레이 경주 코스처럼 구불구불하게 흐른다. 미로를 짚어서 가는 길이며, 그래서 현지인의 도움이 없으면 너무 위험한 길이다. 다행히도 우리 일행의 선두에 나선 ‘사다(짐꾼의 우두머리)’ 헤다르(32)는 십 년 넘게 이 길을 다니고 있다. 그의 밝은 미소와 가벼운 발걸음이 우리 일행을 안심시켰다.

빙하 둔덕선 착시 현상 … 높이 구분 안 돼

가셔브룸베이스캠프로 가기 위해서는 얼음으로 뒤덮힌 빙하를 지나야 한다.

해발 4700m인 콩코르디아에서 5150m의 가셔브룸 BC까지 하루 만에 가기는 버겁다. 거리상으로는 10㎞ 남짓이지만 트레킹 시작점인 아스콜리(Askole·3000m)에서 이곳까지 꼬박 열흘을 걸어 올라오면 누구나 녹초가 된다. 그래서 대개 중간 캠프인 사긴(Sagin·4900m)에서 하룻밤을 묵는다.

다행히 눈이 녹아 주변은 자갈밭이다. 황무지에 작은 텐트를 치고 빙하에서 올라오는 한기를 얇은 매트리스 한 장으로 차단하고 야영에 들어갔다. 2㎏이 넘는 두꺼운 오리털 침낭이 있어 그나마 위안이다. 무거운 짐을 지고 온 짐꾼들 덕분에 가능한 일이다.

반면에 우리에게 안락한 잠자리를 제공한 그들은 야생의 밤을 준비해야 한다. 주변에 널린 돌로 담을 쌓은 후 비닐을 덮어 지붕을 만든다. 그렇다고 살을 에는 한기를 피할 수는 없다. 그래도 그들은 얇은 면 소재의 전통 의상 한 벌만 입은 채 서로의 체온에 의지해 잠을 청한다. 히말라야에서 땅굴을 파고 사는 고산 쥐나 몽구스의 거처와 다름없다. 왠지 미안한 생각이 들었다.

사긴에서 가셔브룸 BC까지는 한나절 거리다. 계속해서 빙하 둔덕을 걷다 보면 착시 현상을 겪기도 한다. 높은 지역에서는 자신이 서 있는 지점이 주변보다 더 높게 느껴지는데 고소 증세의 일종이다. 해발 5000m 지점에 섰을 때, 여러 갈래로 뻗은 빙하 둔덕 위에 듬성듬성 파스텔 톤의 텐트가 십여 동 눈에 들어왔다. 가셔브룸 BC다.

그런데 BC가 발 아래에 있는 것처럼 보였다. 지도에는 분명 150m 더 높게 표시되어 있는데 말이다. ‘헛것을 보고 있는 건가’ 생각하며 서 있던 자리에 주저앉아 심장 박동이 제자리를 찾을 때까지 한참을 기다렸지만, 비현실적인 감각은 사라지지 않았다. 착시였다는 것을 깨닫게 되는 것은 하산할 때다. BC에서 내려다보면 길은 분명 아래로 뻗어있다.

BC 분위기는 삭막했다. BC에서 캠프1(5920m)로 가려면 각국 원정대의 캠프를 지나쳐야 했지만 모두들 간단하게 눈인사만 했다. 흔히 고산 등반을 ‘무형의 가치를 추구하는 자아실현의 장’이라고 말한다. 각각의 개성이 충돌하는 BC에서 인정을 찾는다는 것은 순진한 생각일 것이다.

산중에서 닭고기 파는 파키스탄 장교

빙하에 봉긋하게 솟은 빙퇴석 언덕. 베이스캠프 자리다.

각국 원정대 캠프는 얼음 위로 흐르는 개천을 사이에 두고 파키스탄 군대 캠프와 이웃하고 있다. 빙하 너머는 인도의 카슈미르 지역. 과거 파키스탄과 인도가 국지전을 벌인 곳이다.

캠프에는 보통 30여 명의 분대 병력이 근무한다. 이들의 군 생활을 짐작하는 것은 어렵지 않다. 둥글게 생긴 에프알피(FRP·유리섬유보강플라스틱) 소재의 군 막사는 지저분한 눈과 얼음에 뒤덮여 쓰레기 더미인지 숙소인지 분간하기 힘들 정도다. 복장도 남루하기 이를 데 없다. 빙하에서 겨울을 나는 사냥꾼이라 해도 믿을 만했다. 다행히 일주일에 한두 번씩 오는 헬리콥터가 식량 걱정을 덜어준다고 한다.

헬리콥터가 가져다 주는 선물 중에서 인기 품목은 단연 닭고기다. 산에서는 보기 힘든 육고기를 놓고 원정대와 군 부대 간에 거래가 이뤄지기도 한다. 파키스탄 도심에서 닭 한 마리는 100루피(약 1200원) 정도이지만 히말라야 오지에서는 10배나 높은 가격에 거래된다. 군 당국도 이를 모를 리 없지만 묵인하는 분위기다.

“이런 오지의 군 부대에 지원하는 이유는 한 가지뿐이야. 다른 곳에 비해 월급이 많기 때문이지.”

캠프에는 여러 명의 ‘알리’가 있었는데, 그중 캠프를 책임지는 알리 대위가 말했다. 사실상 거래가 이뤄지면 마진의 상당 부분은 장교들의 몫이다. 그래서 더러는 원정대나 트레커를 상대로 더 큰 ‘세일즈’를 하기도 한다.

“너희 팀원 중 사고를 당하면 우리한테 연락해. 여기는 군용 헬기 아니면 들어올 수 없는 곳이야. 하지만 헬기 값은 딜(Deal)이 안 돼.”

보통 군 헬리콥터가 출동하면 약 1만 달러(약 1100만원) 정도의 비용을 지불해야 한다. 기분이 언짢다기보다는 오히려 위로가 됐다. 정말로 몸을 움직이지 못하는 사고를 당하게 되면 헬리콥터를 부를 수 있는 사람은 캠프의 장교뿐이다.

BC에서 캠프1까지는 도처에 크레바스(빙하가 갈라진 틈)가 도사리고 있는 지저분한 빙하를 건너가야 한다. 빙하 안으로 발 들여놓기가 무서운 곳이다. 트레킹을 넘어 등반의 영역이다. 분지처럼 빙하를 감싸고 있는 카라코람의 어깨를 넘어야 한다.

● 가셔브룸 BC 트레킹 정보 발토로 빙하의 끝, 가셔브룸 BC 가는 길의 거점은 북부 파키스탄의 중심 도시 스카르두에서 출발한다. 4륜구동 차로 아스콜리로 이동한 뒤 약 열흘을 걸어야 BC에 닿는다. 해발 3500∼4000m까지는 황량한 사막 길이 펼쳐진다. 이후부터 빙하 지대다. 급변하는 환경으로 인해 고소 증세를 호소하는 이들이 많다. 도중에 파유(Paiju·3200m), 콩코르디아에서 하루를 더 묵으며 고소 적응을 한다. 국내에서는 ‘M투어(02-773-5950)’ ‘유라시아트렉(02-737-8611)’ 등이 발토로 빙하를 거슬러 가셔브룸 BC까지 탐사하는 상품을 운영하고 있다. 6~8월 여름에만 운영하며 3~4주 일정으로 비용은 500만~700만원이다.

가셔브룸(파키스탄)=김영주 기자 humanest@joongang.co.kr 사진=이창수 사진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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