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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찰 유보선언 배경] 대통령도 당선자도 수사 말라니…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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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4면

검찰은 3일 대북 송금 사건의 수사 유보를 선언하면서 ▶진상 규명 차원의 수사 불가▶법률적 판단의 부적합성▶남북 관계 고려 등을 이유로 내세웠다.

북한에 소위 '경제협력 자금'으로 2억달러를 지원한 게 통치권 행사인지, 실정법 위반인지 논란이 계속되고 있는 가운데 일방적으로 관련자들을 사법처리하기는 곤란하다는 것이다.

특히 검찰 수뇌부는 대북 자금 지원이 대통령의 정당한 통치권 행사로 해석하는 분위기를 줄곧 풍겼다. 즉 사건의 핵심인 김대중 대통령의 개입 사실을 수사 실무팀들이 밝혀내더라도 남북교류협력법이나 외환관리법 위반 혐의를 적용하기는 어렵다는 것이다.

그런 상황에서 송금에 관여한 현대상선 관계자들을 사법처리하는 것도 형평에 맞지 않는다는 논리다.

검찰 관계자는 "외국에서도 국익을 고려해 검찰권을 행사하고 있다. 남북관계 교착 등 큰 국가적 손실이 예상되는 마당에 무턱대고 수사에 나서는 건 적절치 않다"는 주장도 했다.

한편으로는 직접 수사에 나서기보다 정치권에서 이 사건에 대한 특별검사제에 합의해 주기를 바라는 속셈도 깔린 듯하다. 검찰 수사가 입맛에 맞지 않을 경우 야당에서 다시 특검을 요구할 게 뻔한데 굳이 앞장서 여론의 매를 맞을 이유가 없다는 판단이 작용한 것이다.

실제로 한나라당은 검찰 발표 직후 특검제 추진 의지를 밝혔다. 그러나 무엇보다 현직, 그리고 차기 대통령의 뜻을 거스르지 못하는 현실적이고 근본적인 이유가 가장 크게 작용했음을 부인할 수 없을 것 같다.

金대통령이 이미 "이번 사건을 사법심사의 대상으로 삼는 것은 부적절하다"고 밝혔고, 노무현 대통령당선자도 이날 아침 "국회 차원에서의 판단이 좋겠다"는 입장을 대통령직 인수위에 표시했다.

검찰이 이를 거스르고 독자적으로 수사에 착수하는 일은 사실상 불가능한 것일 수밖에 없다. 검찰 간부들이 이날 盧당선자 발언의 진위를 파악하느라 촉각을 세운 것도 이와 무관치 않은 것으로 해석되는 부분이다.

결국 수사 유보는 이런 것들을 종합해 내린 결론인 셈이다. 한나라당이 김각영(金珏泳)검찰총장에 대한 탄핵안을 국회에 내고, '정치 검찰'을 비난하는 여론이 거셀 것임을 알면서도 정면돌파를 택한 것이다. 하지만 검찰의 이런 '정치적 결정'은 앞으로 차기 정권에 부담으로 돌아갈 가능성도 작지 않다.

한나라당의 의도대로 특검 수사가 이뤄질 경우 그 결과에 따라 검찰 수뇌부는 물론 盧당선자의 국정운영에도 걸림돌로 작용할 공산이 크기 때문이다.

법조계 일각에선 1997년 'DJ 비자금 사건'에 대한 김태정(金泰政)검찰총장의 수사 유보 발표를 떠올린다. 그 일이 김대중 정권 출범 이후 검찰의 발목을 잡았듯 이번 결정도 종국엔 역풍을 부를 수 있다는 시각이다.

박재현 기자 <abnex@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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