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eek& cover story] 기분좋은 거짓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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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피노키오가 또 거짓말을 하나 봅니다. 그런데 나쁜 말 같진 않네요. 아이들이 방글방글 웃는 것을 보니. 피노키오 역에는 롯데월드 공연팀의 김중헌씨가 수고해 주셨습니다. 아이들은 일신유치원생들입니다. 디자인=김경진 기자 <capkim@joongang.co.kr>

"거짓말을 하지 않고는 일을 진척할 수 없으니까요. 사기치는 게 몸에 뱄죠."

드라마나 영화의 근사한 배경을 섭외하는, 이른바 '로케이션 매니저'라고 불리는 김신호(31.크레비즈 대표)씨. 그는 자신을 '착한 양치기 소년'이라고 소개했다. "피해를 주거나, 남을 속이려는 게 목적은 아니니까요."

그의 수법(?)은 이런 식이다. 예를 들어 평창동의 으리으리한 집을 발견, 그림이 된다고 본능적인 감각이 발동하면 먹이를 사냥하듯 돌진한다. 부저를 누르곤 "방송국에서 나왔는데요, 이 집이 너무 멋져 촬영 장소로 사용이 가능할까 해서요." 그러면 십중팔구 "됐습니다. 저흰 그런 거 안 해요"란 대답이 돌아오는 순간 그의 거짓말은 시작된다. "아니오. 집안을 찍으려는 게 아니라 이 문 앞만 쓰면 되는데…." 주인과 말문이 트이면 다음엔 "조명만은 대문 안쪽으로 들어가야 하는데"라며 조금씩 야금야금 입성한다. "지금까지 찍은 촬영 장소 중 최고" 등의 입에 발린 소리는 기본. "칭찬에 약해지지 않는 사람은 없더라고요. 결국엔 집을 통째로 접수하게 됩니다."

그는 뻔히 장소를 섭외하고도 제작진에겐 "도저히 빌릴 수 없다"며 시치미를 떼기 일쑤다. "그래야 장소 귀한 줄 알고 함부로 행동하지 않거든요."

그의 선의의 거짓말 예찬론은 이랬다. "아무 말이나 무턱대고 좋은 말을 하면 오히려 '오버'한다고 나쁜 인상을 주죠. 관찰을 해 꼭 필요한 부분만 치켜세우는 거짓말을 해야 효과가 납니다. 자꾸 그렇게 말하다 보니 언젠가부터 사람의 좋은 면만 보게 되더라고요. '거짓말의 내재화'라고 할까요? 정말 긍정적인 사고가 몸에 배게 됐죠."

지나친 처세술일까요. 아니면 얄팍한 잔머리나 수완에 불과하다고요? 인정합니다. 그러나 솔직해집시다. 세상을 살아가면서 거짓말 한번 안 한다면 그것보다 더한 거짓말이 어디 있을까요. 궁색한 변명이든 속 뻔히 보이는 인사말이든 팍팍한 현대 사회를 살아가기 위해 거짓말은 때론 감초이며 때론 윤활유입니다.

오늘 만우절입니다. 괜한 거짓말로 골탕 먹일 생각일랑 말고 이런 '선의의 거짓말' 어떤가요. "미스 김 오늘 따라 더 예뻐 보여." "과장님 따라가려면 아직 멀었죠."

글=최민우 기자<minwoo@joongang.co.kr>
사진=권혁재 전문기자 <shotgu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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