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잡는 「심증조사」|<근하군 살해사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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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7면

【부산】근하군 살해범으로 거의 단정되었던 전진열(20) 군에겐 뚜렷한 「알리바이」가 있었다. 전군을 진범으로 믿어왔던 경찰은 전군이 내세운 「알리바이」를 조사하기 위해 사건당일 전군에게 과외수업지도를 받은 3명의 어린이들의 증언을 듣고 4일 상오2시 석방했다가 신병을 확보하고 있다.
전군의 집에서 압수됐다던 「잠바」바지 모자 등도 범인이 입고 있었다는 것과는 색깔이 다를 뿐 아니라 그가 차고 있었던 시계도 검은 문자만이 아니었으며 경찰은 7번이나 자백, 번복을 하는 통에 범행을 뒷받침하기 위한 현장검증도 해보지 못했고 방증이라고 볼 수 있는 볼·박스와 노끈, 범행용 칼의 출처도 확인하지 못했다는 것이 밝혀짐으로써 전군은 용의선에서 벗어나고만 것이다.
경찰은 자백의 신빙성을 따져보기 위해 전군이 내세운 「알리바이」를 조사했는데 3일 밤 수사본부에 출두한 이민성(11) 흥봉택(11) 김대신(11)군 등 세 어린이들은 범행 날짜인 『지난17일에도 평소와 같이 밤7시부터 10시까지 3시간에 걸쳐 국어·사생·산수 등을 전 선생에게서 지도 받았다』는 것이며 『집에 돌아간 시간이 밤10시5분쯤이었다』고 밝힘으로써 전군이 내세운 「알리바이」는 증명된 것이다.
이와 같은 세 어린이의 증언으로 전군의 혐의가 풀리자 경찰은 부산지검 김융제 검사장관사에서 검사장 김태현 부장검사와 수사본부요원들이 회동, 전군의 신병을 풀어놓기로 합의했다.
그러나 검찰의 수사단계에서 전군이 범행을 자백한 만큼 『전혀 무고하다는 전군이 어째서 자백을 했는지?』하는 의문점이 그대로 남겨져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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