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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날로그로 돌아온 신중현 "인간의 소리가 다시 들렸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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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2면

1975년 ‘거짓말이야’ ‘미인’ 등 신중현의 히트곡 대부분이 방송·판매 금지됐다. 신중현은 그 해 대마초 파동에도 휩쓸려 5년간 활동 금지에 묶였다. 박정희 찬가 제작을 거부한 괘씸죄라는 해석도 있다. 박근혜 대통령 시대의 감회를 묻자 그는 “세대가 다르니 생각도 다를 것이다. 그 시대의 기류와 제 고집이 부딪친 것이다. 살아보니 고행으로부터 많은 걸 얻고, 또 그게 나를 지탱하는 힘이 됐다”고 했다. [권혁재 사진전문기자]

한국 록의 대부 신중현(75)이 아날로그 원음(原音)에 빠졌다. 신중현은 ‘커피 한 잔’ ‘미인’ ‘빗속의 여인’ 등 숱한 히트곡을 남긴 뮤지션이다. 2010년 세계적인 기타 제작사 펜더로부터 세계 여섯 번째, 아시아인 최초로 기타를 헌정 받은 기타리스트이기도 하다.

 신씨는 최근 경기도 용인 작업실에 스튜더(studer)사와 리복스(revox)사의 릴 테이프 레코더 등 아날로그 녹음장비를 들여놨다. 그는 “오랜 탐구 끝에 인간의 소리가 그대로 들리는 건 역시 아날로그라는 결론을 내렸다”고 말했다.

 “디지털 시대인데 아날로그가 되살아나고 있어요. LP에 진공관으로 음악을 듣는 사람이 늘고 있죠. 음악은 MP3나 듣는 귀로 평가하는 게 아니에요. 하이파이에 아날로그로 들으면 내가 만든 소리가 그대로 전달됩니다. 그게 진짜 음악이에요.”

 펜더사로부터 기타를 헌정받은 이래 미국에서 그의 음악을 재조명하는 움직임이 있었다. 미국의 음반 레이블 ‘라이트 인 디 애틱’에서 그의 대표곡을 뽑아 ‘신중현 : 아름다운 강산’과 ‘신중현 : 싸이키델릭 록 사운드’ 등 앨범 두 장을 발매했다.

 또 라이온스 음반사에선 ‘신중현과 엽전들’을 LP로 복각했다. 그의 음악이 미국에서 재조명 받으면서 ‘해님’이 제시 아이젠버그 주연의 영화 ‘더 더블’(The double·2013)의 삽입곡으로 쓰이고, 미국 TV시리즈 ‘캘리포니케이션’에는 ‘나를 더 이상 괴롭히지 마라’가 배경음악으로 들어가기도 했다.

 “라이트 인 디 애틱이란 음반사는 그 이름대로 먼지 쌓인 다락방에 숨은 보석 같은 음악을 찾아내는 레이블이에요. 거기서 제 음반을 새로 마스터링해서 LP를 찍었는데, 역시 기술이 뛰어나서인지 소리가 정말 다르더라고요. 사람들이 이 소리를 들으면 음악을 더 좋아하겠구나….”

 사실 신중현은 디지털 음악의 선구자다. 작업실 한 켠에는 동영상 강의를 제작할 수 있는 시설도 갖춰놨다.

손수 운영하는 자신의 홈페이지(sjhmvd.com)에 언젠가는 화성학·작편곡법·주법 등의 강의를 올리겠다는 생각에서다.

 1980년대 우리나라에서 가장 먼저 컴퓨터로 ‘인형’이란 곡을 만들었고, 94년에 발매한 ‘무위자연’은 밴드에조차 의존하지 않고 컴퓨터의 힘을 빌려 연주·녹음·믹싱까지 모든 걸 혼자 해낸 음반이었다. 2000년대 중반에는 24비트(bit) 음질을 낼 수 있는 DVD 멀티 사운드를 연구했다.

 “디지털의 끝까지 가봤지만 한계가 있기 때문에 원점으로 돌아가는 겁니다. 디지털이란 0과 1의 숫자로 표현하기 때문에 결국 필요한 것만 추려 담아 빠지는 음이 많아요. 소리는 깨끗하게 들리는 대신 인간적인 면은 없는 겁니다. 요즘 세상도 그렇잖아요. 가슴으로부터 오는 솔(soul)이 없다 보니 사람들이 차가워지는 거죠.”

 그는 릴 테이프로 녹음을 하고 LP에 기록해 진공관 앰프로 듣는 가장 아날로그적인 방식으로 음악을 전하려 한다.

 “대중에게 아직 확실한 제 모습을 못 보여드렸다고 생각합니다. 신곡을 만들려고 합니다. 인생은 칠십부터잖아요. 시간이 많이 걸리겠지만 신곡은 원 테이크로 수정 없이 한 번에 녹음하려고 해요. 한 번에 가지 않으면 음악이 살아있지 않아요. 땜질을 하거나 수정을 하면 일단 시간이 지난 거잖아요. 그럼 아무리 똑같이 한다 해도 한 시간 전의 감정이 되살아날 수 없거든요.”

 신중현의 초창기 앨범이 그런 식이었다. ‘히키 신’이란 이름으로 58년 발매된 기타 솔로곡집, 64년 ‘애드 훠’의 첫 음반 ‘빗속의 여인’은 릴 테이프 녹음기에 마이크 하나를 놓고 멤버들이 빙 둘러서서 한번에 녹음을 끝냈다. 지금처럼 음악을 부분부분 나눠 가장 잘 나온 사운드를 골라 짜깁기하는 디지털 녹음 방식과는 거리가 멀다.

 “진짜 음악을 듣는 사람이 많아지면 사라져간 일자리가 생깁니다. LP 찍는 공장이 다시 생긴 것처럼 진공관 회사 등 관련된 수많은 기업이 생기고 사라진 전문가들이 다시 등장할 겁니다. 음악은 단순한 오락거리나 부속물이 아니에요. 인간만이 느끼는 감각이죠. 음악의 가치, 진정한 인간다움을 다시 생각할 때가 됐어요.”

용인=이경희 기자
사진=권혁재 사진전문기자

◆신중현=한국 록음악의 선구자. 1950년대 미8군 쇼단에서 음악생활을 시작했다. 1964년 발표한 앨범 ‘빗속의 여인’은 한국 최초의 창작 록 음반으로 기록된다. ‘봄비’ ‘커피 한잔’ ‘님은 먼 곳에’ ‘미인’ ‘아름다운 강산’ ‘꽃잎’ 등 히트곡을 쏟아냈다. 박인수·김정미·김추자·펄시스터즈 등 ‘신중현 사단’도 길러냈다. 97년 봄여름가을겨울·한영애·강산에·이은미·사랑과평화·시나위·윤도현밴드·김목경·김광민·한상원 등 후배 뮤지션이 참여한 한국 최초의 가요 헌정앨범 ‘A Tribute to 신중현’이 최근 음원으로 재발매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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