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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너지의 미래] 석유시대의 종말은 언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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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프린스턴大 지구과학 교수인 케네스 드페이스는 퇴근시 주로 집까지 걸어간다. 그의 집은 캠퍼스에서 다섯블록 떨어져 있다. 어느날 그는 집으로 걸어가며 갑자기 주차장을 가로질러 골목길을 대각선으로 건넜다. 운동화를 신은 발이 자기를 어디로 데려가는지에 딱히 관심을 두지 않는 것 같았다. 손은 파카 호주머니에, 눈은 구름 한점 없는 푸른 하늘에 고정돼 있었다.

그렇다면 그의 생각은 어디에 가 있었을까. 늘 그렇듯 그는 세계의 석유공급 문제를 골똘히 생각하고 있었다. 특히 그는 석유 탐사·시추·채굴, 그에 따른 수요와 공급의 계산, 그리고 중동의 정치 등 석유개발사업과 맞물려 있는 모든 복잡다단한 일들도 결국 간단한 하나의 수학공식을 따를 수밖에 없다는 점을 다른 사람들에게 설명하는 데 골몰하고 있다.

바로 그것이 드페이스의 평생과업이다. 그는 자기 말이 지나치게 학술적으로 들릴까 걱정하지 않는다. 성인기의 대부분을 프린스턴대에서 보냈기 때문에 충분히 그럴 수 있다.

그러나 유전에 대해 그는 향수에 가까운 친숙함을 느낀다. 석유 엔지니어였던 부친 덕택에 학창 시절 여름방학이면 석유 시추현장에서 아르바이트를 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는 자신의 견해를 진지하게 받아들이지 않는 사람들이 더 많은 데 대해 답답함을 금치 못한다.

그의 견해가 옳다면 문제는 심각하다. 드페이스는 20세기의 세계 석유공급 상황을 그래프로 그리면 종형(鐘形) 곡선이 된다고 주장했다. 그의 계산에 따르면 2∼6년 후 석유공급량이 정점에 도달하고 그 뒤에는 전세계가 만성적인 석유부족 현상에 시달리게 된다.

그럴 경우 조지 W. 부시 미국 대통령이나 사우디아라비아의 왕자들, 아니면 시장의 ‘보이지 않는 손’도 어쩔 수 없다. 드페이스는 “지금 조치를 취한다고 해도 10년 뒤에나 석유수급에 영향을 미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물론 드페이스는 좀 유별난 경우이지만 석유시대의 종말을 경고하는 사람들은 그 외에도 더 있다. 기후 과학자들은 지난 10년간 온실가스인 이산화탄소를 배출하는 석유 등 화석연료의 사용을 크게 줄여야 한다고 주장했다. 또 9·11 테러사태 이후로 중동산 석유에 대한 의존도를 줄이라는 요구도 거세졌다. 동시에 최근 몇년간 대체에너지 기술도 상당한 진전을 보였다.

미국과 유럽에는 풍력발전소들이 많이 생겨나 경쟁력있는 가격으로 전기를 생산하고 있다. 태양광을 전기에너지로 변환하는 광전지판도 가격이 하락해 널리 설치되고 있다.

지난 몇십년간 사양길에 접어들었던 원자력 발전도 이산화탄소를 배출하지도 않고 과거보다 더 안전하고 비용도 적게 들게 됐기 때문에 일부 전문가들 사이에서 다시 인기를 얻고 있다.

또 다른 ‘청정’ 에너지 기술인 수소 연료전지는 전력공급뿐 아니라 자동차 동력원의 장기적인 대안으로 점점 더 각광받고 있다.

그러나 대체연료 분야의 진전이 아무리 빠르다고 해도 당분간 우리는 석유·석탄·천연가스에 의존할 수밖에 없는 실정이다. 2차대전 당시 원자폭탄을 만들어낸 것 같은 정치적 의지와 열성없이는 옛 발전소를 대체하고 수많은 주유소를 단계적으로 없애기까지는 수십년이 걸릴 것이다.

드페이스는 석유수출국기구(OPEC)가 석유공급을 제한해 서방경제를 휘청거리게 했던 1970년대의 악몽을 상기시킴으로써 이에 대한 논의가 시급하다는 인식을 강하게 심어주고 있다.

드페이스는 1950년대 말 셸社 연구소에서 지질학자인 M. 킹 허버트 아래서 잠시 일한 적이 있다. 당시에는 석유가 빠른 속도로 발견됐고 석유사업은 끝없는 발전을 계속하고 있었다.

그러나 허버트는 미국 내의 석유생산을 통계적으로 분석해 당시의 고무적인 추세와는 다른 결과를 도출해냈다. 시간을 X축으로 하고 석유생산량을 Y축으로 해서 좌표를 그렸을 때 그 그래프가 종형 곡선을 이루기 시작한 것이다. 종형 곡선의 특징은 한동안 가파른 상승세가 이어지다가 결국 정점에 이르고 그 다음은 다시 가파르게 하강하는 것이다.

1956년 허버트는 미국 내의 석유생산이 1970년대 초 정점에 이를 것으로 전망했다. 드페이스는 허버트의 예측을 진지하게 받아들였다. 그는 “석유업계가 전망이 별로 없다고 생각해서 학계로 진출하게 됐다”고 말했다. 정말 잘한 선택이었다. 허버트의 예측대로 미국의 석유생산은 1970년 정점에 도달했다.

허버트가 1989년 사망한 후 드페이스는 허버트의 기법을 세계 석유공급에 적용해보았다. 그러자 충격적이게도 세계 석유공급이 정점에 이르는 시기가 몇십년 뒤가 아니라 바로 몇년 후 온다는 결론에 도달했다. 계산 방법에 따라 2004년과 2008년 사이 정점에 이른다는 것이다.

석유공급이 종형 곡선을 따르는 이유로 드페이스는 한가지 비유를 들었다. 사냥꾼이 사격연습을 한다고 가정해보자. 그는 바람이나 실수 또는 그밖의 이런저런 이유 때문에 매번 아주 정확하게 표적에 명중시키지는 못한다.

사냥꾼이 총을 1천번 쏘았을 때 각각의 총알이 표적의 정중앙에서 빗나간 거리를 측정하고 같은 거리 내에 떨어진 총알의 수를 좌표로 표시하면 그 결과는 종형 곡선으로 나타난다. 대부분의 총알은 표적의 중앙에 가깝게 떨어지기 때문에 표적 중심에서 그래프가 정점을 이루고 중심의 좌우로 빗나간 총알이 양쪽으로 하향곡선을 그린다.

탐사를 통해 석유를 찾느냐 못찾느냐는 것도 표적에 총을 쏘는 것과 다름없기 때문에 이와 유사한 그래프로 나타난다. 드페이스의 그래프에 따르면 20세기 초에는 탐사기술이 발달하지 않아 유막이 눈에 보이는 유전 등 찾기 쉬운 유전 위주로 개발되면서 이 곡선이 완만하게 상승했다. 그러다가 지질학자들이 북해·배스해협·사우디아라비아 석유 같은 심해에 매장된 석유를 많이 발견한 1950년대와 1960년대 이르러 급격한 상승곡선을 이뤘다.

그러나 세기 말이 되어 발견 속도는 가속화됐지만 발견된 석유량이 줄어들면서 곡선은 거의 정점에 이르렀음을 알려주는 일직선을 나타내기 시작했다. 지금은 첨단 탐사기법을 사용하는데도 시추한 유정 10개 중 9개에서는 석유가 나오지 않는다.

물론 석유공급이 반드시 종형 곡선을 따라야 한다는 법은 없다. 그러나 문제는 그렇지 않다는 논리적인 근거가 없다는 데 있다고 드페이스는 지적했다. 현재 채굴 용량을 풀가동하지 않는 산유국은 사우디뿐이다. 그같은 사실 때문에 사우디는 세계 석유시장을 장악할 수 있게 됐지만 그렇다고 해서 사우디가 공급 부족분을 전부 충당할 수는 없다. 최대 용량을 채굴해도 사우디가 추가로 공급할 수 있는 양은 세계 전체 공급량의 4%에도 못미친다.

기술이 해법을 제공할 것 같지도 않다. 드페이스는 에너지 회사들이 지난 30년간 석유 발견·채굴 능력을 향상시키기 위해 수십억달러를 투자해왔지만 가까운 장래에 획기적인 기술이 개발된다고 해도 상황이 크게 달라질 것 같지는 않다고 말했다.

기술의 발달로 가장 발견하기 힘든 석유를 채굴하는데는 도움이 되겠지만 석유공급 그래프는 여전히 하향곡선을 그리게 될 것이라는 의미다. 드페이스는 “석유공급 그래프가 다시 상승 곡선을 그리려면 완전히 새로운 형태의 유전이 발견돼야 하지만 그런 유전이 존재한다는 증거는 전혀 없다”고 말했다.

드페이스는 지난해 10월 ‘허버트의 정점’(Hubbert’s Peak)이라는 책에서 이런 주장을 제기한 뒤 많은 비판을 받고 있다. 미국지질연구소(USGS)의 지질학자 로널드 샤펜티어는 최근 사이언스誌에 기고한 글에서 “드페이스의 주장은 방법론적으로 문제가 있다”고 비판했다.

그런 결과를 도출하는데 동원된 데이터의 양과 인력이 너무 적기 때문에 신빙성이 떨어진다는 것이다. USGS가 많은 인력을 동원해 오랜 연구 끝에 2000년에 내놓은 조사 결과는 세계적으로 채굴가능한 석유량이 3조배럴 이상임을 보여준다(드페이스의 추정치보다 1조배럴 더 많다).

샤펜티어는 지금 채굴되고 있는 남대서양의 심해유전과 아직 개발되지 않은 카스피해·시베리아·아프리카의 유전 등 추가적인 발견으로 그 전망마저 상당히 달라질 수 있다고 주장했다. 드페이스는 새로운 유전을 찾아낼 가능성에 이의를 제기하는 것은 아니라면서도 그 성과가 기대에 못미칠 것이며 USGS의 추정 방법에도 결함이 있다고 반박했다.

만일 드페이스의 예측이 맞다면 세계는 점점 더 늘어나는 에너지 수요를 어떻게 충당할 것인가. 자동차 제조업체들은 수소 연료전지에 희망을 걸어왔다. 석유 대신 수소 연료전지를 사용하면 온실가스 문제도 없을 뿐더러 자국에 적대적인 지역에서 시추할 필요도 없다. 제너럴 모터스(GM)社는 1990년 연간 1백만달러였던 연료전지 개발예산을 올해 1억달러로 증액 편성했다.

GM의 연료전지 담당 수석 엔지니어인 매트 프롱크는 “수소가 장기적인 해결책이라고 믿는다”고 말했다. 한편 광전지의 경우 이를 만드는데 사용되는 반도체의 고비용이 걸림돌이 되고 있지만 머지않아 비용이 덜 드는 대안이 생길 것이다.

예를 들어 美 국립재생에너지연구소는 저렴한 비용으로 유리·강철, 또는 구부릴 수 있는 플라스틱판에 초박막 반도체층을 입히는 방법을 개발 중이다.

이러한 기술들은 10년 안으로는 보편화될 것 같지 않다. 그동안에는 석유보다 온실가스 배출이 적고 공급량이 풍부한 천연가스가 유력한 대안이 될 수 있다. 그러나 천연가스가 차에 이용되려면 완전히 새로운 연료 공급 인프라가 구축돼야 한다.

따라서 단시일 내에는 이뤄질 수 없는 일이다. 그렇다면 남은 대안은 에너지 절약뿐이다. 자원절약론자 에이머리 러빈스에 따르면 미국 차량의 평균 연비를 l당 1.2km만 높여도 미국이 걸프지역에서 석유를 수입하지 않아도 된다.

물론 앞으로 10년 동안 석유공급에 차질이 생기지 않을 수도 있다. 드페이스도 가능성은 낮지만 자신이 틀릴 수도 있음을 인정한다. 그는 심지어 허버트의 추정이 맞아떨어진 것이 단순히 운이 좋았기 때문일지도 모른다고까지 생각한다.

그는 “허버트가 옳았던 것은 분명하지만 그가 단순히 운이 좋았던 것인지, 아니면 실제로 자신이 옳다는 것을 알았는지는 아무도 모른다”고 말했다. 그 정도만 해도 지구온난화에 이어 화석연료의 대안을 찾아야 할 절박한 이유가 충분히 될 수 있다.

출처:뉴스위크 Fred Guterl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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