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장의 오열에 원혼은 말없고…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3면

금릉교통참사로 희생된 39위(3구는 가족들이 찾아갔다)의 합동위령제가 18일상오11시 서울조계사에서 많은 유족들의 오열속에 엄수되었다. 박기종조계종총무원장과 이성수 주지스님이 향불이 은은한 불단에서 고인들의 원혼을 달래고 극락행을 비는 경을 읽는동안 조계사 뒤뜰에는 창자를 쥐어짜는듯한 유족들의 호곡소리가 가을하늘에 메아리쳤다.
유족들은 빈소에 안치된 관을 부둥켜 안고 울다지친채 넋을잃고 한없이 엎드려 있었다. 위령제가 끝난 뒤 15구의 유해는 가족들에게 인계되었다.
이에앞서 17일하오6시20분 33구의 유해는 김천에서 열차에 실려 말없이 서울에 돌아왔다.
절구경을 떠났던 할머니들이 말없는 주검으로 돌아온 이날의 서울역 화물「센터」의 「플랫폼」은 마중나온 3백여 유족들의 통곡을 얼룩졌다.
모두 하얀광목에 「코스모스」「아스파라거스」꽃이 곱게 덮인 33개의 관은 서울역에 내리자마자 19대의 「앰블런스」에 옮겨 실렸다.
유해가 「앰블런스」에 옮겨실때마다 호명으로 할머니 어머니의 이름을 확인한 유족들은 저마다 목이메어 한없이 몸부림치면서 쉽사리 관을 놓질 않았다.
유해는 2백여경찰관들의 경비를 받으며 서소문육교∼시청앞을 거쳐 모두 일단 조계사에 이르렀다.
어둠이 깃들인 서울거리를 이들 유해를 실은「앰블런스」가 지나갈 때 연도의 시민들은 저마다 가던 길을 멈추고 고인들의 명복을 빌었다.
조계사에 이른 33구유해는 스님들의 구슬픈 독경 소리를 들으며 특별빈소에 안치되었다가 신도가 아닌 18구는 가족들에게 인계되어 옛집에 돌아가고 나머지 15구만이 이곳에서 하룻밤을 보냈다.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