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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추사고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1면

가을은 건축의 계정이다. 교외의 신흥지대에는 요즘 눈이 부시게 새 집들이 들어 서고 있다. 장미 한그루를 가꿀만한 여유도 없이 추녀들이 맞부딪치고 있는 것을 보면 주택난을 새삼 실감할 수 있다.
무서리가 내리면 공사장은 한결분주해진다. 낮의 길이도 점점 짧아가며 추위가 한걸음씩 다가서기 때문이다. 15일 서울 구로동의 건축공사장에서 「슬라브」가 무너져 19명이나 사상한 것은 졸속이 빚은 「만추사고」였다.
만추가 아니라도, 주택난은 건축업자의 날림기술을 부채질하고 있다. 아무리 웅장하게 보이는 집도 며칠만에 뚝딱 해치우는 것이 요즘의 공법이다. 눈(설)을 뭉쳐놓은 것같은 「불록」위에 육중한 사고건물도 가능하며 벽돌집도 그런 기초공사위에 세워진다.
「서커스」가설무대같은 도심의 고층건물은 또 얼마나 아슬아슬한가.
많은 건물들이 장식과 외관에만 치중하며, 실속은 사상누락이다. 그「코스트」를 차라리 기초공사에 투하한들 불안은 훨씬 덜어질 것이다.
「유기건축」(오개닉·아키테처)을 주장한 현대건축의 아버지「프랑크·로이드·라이트」는 유명한 일화 하나를 갖고 있다.
그는 소년시절에 그가 자란 미국「위스콘신」주의 어느 도시에서 신축중인 건물이 폭싹 무너져 많은 사람들이 죽음을 당하는 광경을 목격했다. 「라이트」소년은 그때부터 건축가의 꿈을 키워왔으며 그는 오늘 미국「펜실베이니아」주에 「낙수장」과 같은 명작을 남겨놓았다. 그의 지론은 집은 그 바깥에서 감상하는 작품이 아니라 바로 그속에서 인간이 살아야하는 작품이라는것에 근거를 두고 있다.
건축은 그 때문에 미술만도 기술만도 아니다. 시각·조형등은 예술적인 안목이 필요하지만 그건물을 지냋하는 것은 기술이며 그것은 공학의 분야이다.
당국은 주택난의 해소도 제대로 못하면서 인간이 그속에서 살아야하는 건축물의 안전도마저 정확히 감시를 못한다면 면목이 없다. 무덤같은 주택은 없는것만 못하다는 이론은 하나도 무리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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