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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비즈 칼럼

애플 vs 블랙베리 보면 창조경제 보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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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10면

이성일
성균관대 시스템경영공학부 교수

새 정부의 국정운영 기조는 ‘창조경제’다. 과거 정부도 제조업에서 벗어나 고부가가치를 창출할 수 있는 ‘지식 중심의 서비스업’으로 산업 패러다임을 바꾸려는 시도가 있었다. 그럼에도 현 정부가 창조경제라는 용어를 사용하면서까지 차별화하려는 이유가 무엇일까.

 급변하는 세계 산업지형, 특히 정보기술(IT) 산업구조의 변화를 통해 방향을 가늠해 볼 수 있다. 창조경제라는 이름으로 불리는 새로운 산업 패러다임은 기존 산업 지배구조의 혁신과 창조적인 생태계의 조성이 핵심이어야 한다. 산업 지배구조의 혁신은 기업들 간의 지배구조와 수입구조를 완전히 재정립하는 것이다. 대부분의 산업은 ‘갑·을’ 관계로 대변되는 지배구조가 수익구조를 결정하게 되는데, 창조경제는 이를 혁신시킬 수 있어야 한다. 그래야 새로운 기회를 열고, 경제시스템을 지배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런 생태계의 혁신이 불가능하다면, 완전히 새로운 생태계를 창조할 수 있는 신산업을 만들어야 한다.

 미국의 애플사는 창조경제에서 모델이 되는 기업이다. 애플의 아이튠즈는 엔터테인먼트와 IT를 융합한 사례다. 애플은 음원을 다운로드받을 때 아이튠즈라는 프로그램을 통해 받을 수 있도록 하면서 음원 제작자와 로열티 계약을 맺었다. 불법 복제 문제를 해결해 주면서 음원 제작자와 가수들로부터 환영을 받게 되고, 기존 음원 시장의 구조를 바꿔 놓았다. 소속 가수나 음원 하나 없는 IT회사가 새 비즈니스 모델로 엄청난 수익을 얻게 됐고, 음원 유통 산업의 생태계 자체를 혁신시켰다. 스마트폰의 원조는 RIM으로 유명한 ‘블랙베리’다. 전화와 문자메시지, e메일을 휴대전화에서 해결할 수 있는 혁신 제품이었다. 하지만 거기까지였다. 생태계를 창조하거나 관련 산업을 지배할 수 있는 비전이 없었다.

반면 애플의 아이폰은 출시되자마자 앱의 개방화를 추구하면서 관련 산업의 지형을 완전히 바꿔 놓았다. 이동통신망을 소유하고 있었기에 결코 변하지 않을 것 같았던 이동통신 서비스 회사와 단말기 회사의 지배관계, 이동통신업체로부터 하청업자처럼 취급받으면서 프로그램과 콘텐트를 공급하는 제3자들과의 수익구조도 애플이 완전히 바꿔 놓았다.

 그럼 한국의 삼성과 LG·현대자동차는 과연 그런 생태계를 창조하고 지배할 능력이 있을까? 이러한 혁신은 보수적인 ‘수성’의 형태를 구사하는 대기업의 생리와는 맞지 않는다. 창조적 혁신은 자연스레 새로운 것을 만들어내서 기존의 질서를 뒤집고자 노력하는 벤처기업이나 중소기업을 중심으로 이루어질 것이다.

 창의적 비즈니스 모델의 개발, 융합학문·산업 지원, 지식서비스 산업 육성 등은 과거 정부에서도 시도했던 과제다. 필요한 과제지만 이런 모델들은 개별 산업·기업의 단위로 이뤄진다. 산업을 아우르는 정부의 입장에서는 이런 작은 입장을 취해서는 곤란하다. 이런 모델보다는 산업 시스템에서 어떻게 지배구조를 정립할지, 생태계를 창조할지 고민해야 한다.

이성일 성균관대 시스템경영공학부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