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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삶의 향기

'오래된 미래' 외갓집을 만들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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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2면

이원규
시인

요즘 한적한 산길을 가다 보면 산딸기꽃이 지천이다. 줄딸기·멍석딸기·곰딸기·고무딸기·복분자딸기 등이 저마다의 빛깔로 꽃을 피우고 있다. 배고픈 어릴 적에는 산딸기를 그 얼마나 기다렸던가. 살구·오디와 더불어 왕복 이십 리 등·하굣길을 환하게 밝히던 등불이었다. 딸기의 어원이 저 하늘의 달에서 왔다니, 산딸기는 아무래도 지상에 내려앉은 붉은 저녁노을의 식솔들이다.

대학 시절에는 해마다 5월이면 경산군 고산의 양딸기밭으로 몰려갔었다. 젊은 연인들이나 ‘미팅’으로 처음 만난 이들도 삼삼오오 노지의 딸기밭에 가보아야 비로소 풋풋한 연애가 시작됐다. 돌이켜보면 딸기밭의 낭만 없이는 그 연애가 오래가지 못할 정도였다. 지금의 대학가 풍속도와는 완전히 다른 풍경이다.

지난 주말 경남 사천시 곤양면의 딸기밭에 다녀왔다. ‘그리운 순이 딸기농장’이었다. 경남지역의 딸기밭은 하동의 옥종면, 진주의 수곡면, 사천의 곤양면이 전국적으로 알려져 있다. 그 모두가 지리산 천왕봉에서 발원하는 덕천강을 끼고 있다. 그 맑은 물을 먹고 자랐으니 이곳의 딸기들은 모두 천왕봉 ‘성모할매’의 자식들인 셈이다.

이 환한 봄날, 덕천강 변에 자리 잡은 ‘그리운 순이 딸기농장’에서 작은음악회가 열렸다. 아코디언을 연주하는 ‘선녀와 나무꾼’의 신도웅 선생, 보컬인 지리산행복학교의 ‘고알피엠 여사’ 신희지씨가 콤비를 이룬 지리산행복밴드도 참가했다. 봄 하늘에 손풍금과 색소폰 소리가 울리고, 통기타를 치는 가수의 애잔한 목소리와 고전무용도 곁들여졌다. 주변의 농부들과 지인들, 전국에서 이 농장의 딸기를 사먹던 이들이 찾아와 한바탕 잔치를 벌인 것이다.

차일을 친 잔칫상에는 딸기밭 주인인 이현순씨 부부가 준비한 갓 따온 딸기와 딸기떡·엄나무순·정구지지짐·인삼튀김·야채샐러드 등 먹거리도 넉넉했다. 직접 딸기를 따는 체험을 하고, 돌아갈 때는 모두 딸기잼 한 병씩을 선물로 받았다. 딸기밭 농장은 순식간에 모두의 ‘외갓집’이 된 것이다.

그러나 언제부터인가 ‘외갓집’이 사라지기 시작했다. 핵가족화 등 이유야 많겠지만 어찌 됐든 도시의 아이들에게는 방학 때의 유일한 ‘정서적 보루’였던 외갓집, 자연과 모계의 한 축인 외갓집의 그리움이 무너진 것이다. 다행히도 주말농장이나 농사체험 등으로 대체되고 있지만 그래도 뭔가 허전하다. 그리하여 일찍이 남양주의 류기봉 시인은 15년째 ‘포도밭 예술제’를 해왔다. 포도나무에 주렁주렁 포도만 열리는 게 아니라 시와 그림과 음악도 열리는 것이다. 또한 ‘외갓집 체험마을’ 등도 생길 정도가 되었다.

그리하여 나 또한 이런 즐거운 상상을 해본다. 농장의 과실나무를 도시인들에게 한 그루씩 분양하는 것이다. 예를 들면 순천시 월등면의 복숭아농장에서는 일년에 나무 한 그루가 생산하는 평균비용을 계산해 그 가격으로 도시의 가족들에게 미리 분양한다. 농사는 농부가 짓고, 그 복숭아들을 수확해 택배로 보내는 것이다. 농부는 유통비용을 줄이는 등 안정적으로 농장 운영을 할 수 있고, 도시인들은 자기의 복숭아나무와 더불어 그 열매를 더 싸게 먹을 수 있으니 상생의 도농공동체가 되는 것이다.

여기에서만 그치는 게 아니라 농부는 사진과 농사일기를 써야 한다. 각 나무에 도시인들의 명찰을 달아주고, 블로거나 메일로 복사꽃 사진을 찍어서 보내준다. 철마다 농사과정을 투명하게 공개하며, 한 번쯤 모두를 초대하는 축제도 여는 것이다. ‘얼굴 없는 농부’가 아니라 당당한 농업선생이자 외삼촌·외숙모가 되는 것이다. 최소한의 사진기술과 글쓰기를 배워야 하는 이유다. 지리산학교&지리산행복학교도 그래서 만든 것이다.

도시인들은 농가를 방문해 자기 나무가 잘 자라는지 직접 가꾸며 작은 농장주가 되는 것이다. 휴가를 가도 그리운 복숭아나무를 찾아가 삼겹살에 술도 한잔 나누고, 아랫방에 깃들여 하룻밤 자는 것이다. 여행비용도 훨씬 적게 들고 복숭아 맛도 제대로 느낄 수 있다. 비단 복숭아뿐이겠는가. 농부 가족은 도시 친구가 생기고, 도시 가족과 아이들은 ‘오래된 미래’인 외갓집이 생겨서 더없이 좋을 것이다. 형식적인 자매결연이나 성급한 귀농·귀촌 이전에 이것이 먼저가 아닐까.

이원규 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