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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왕들의 귀환, 음악의 힘을 확인하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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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4면

양성희
문화스포츠부문 차장

음악의 왕들이 일시에 돌아왔다. 우선 조용필. 이건 신드롬에 준하는 수준이다. 19번째 앨범에서 젊은 취향의 모던 록, 모던 팝을 선보였다. 예상을 깬 변신에 환호가 쏟아졌다. 시장에서도 승승장구다. 올드 팬뿐 아니라 젊은 층까지 주머니를 열었다. 대표 가왕다운 위엄이다.

 삐딱한 시선도 있다. 한 음악 관계자는 페이스북에 “만약 폴 매카트니가 마룬5의 ‘무브스 라이크 재거(Moves Like Jagger)’ 같은 곡을 냈다면 어땠을까”라고 물었다. 폴 매카트니는 폴 매카트니일 뿐 시류를 탄 젊은 음악으로의 변신에 마냥 찬사 일변도는 아니었을 거란 얘기다. 조용필의 새 음악과 그의 보컬이 잘 맞지 않는다는 지적도 있다. 그러나 한국적 현실이 있다. 환갑을 훌쩍 넘기고도 현역이 돼 여러 세대와 소통하는 음악가가 거의 없기 때문이다. 조용필의 성공담은 실버세대의 존재증명으로까지 받아들여진다.

 들국화도 돌아왔다. 지난해 말 팀을 재결성해 팬들을 감격시켰다. 이달 초 공연에서는 18년 만의 신곡도 발표했다. 제목부터 의미심장한 ‘걷고 걷고’와 ‘노래여 잠에서 깨라’다. 전인권의 폭발적 고음이 무대에서 다시 포효할 때 팬들은 마치 자신의 오랜 상처가 아문 듯 묘한 감동에 휩싸였다. “내가 세상에 태어난 것도 모두 어쩌면 축복일지 몰라/걷고 또 걷는다”(‘걷고 걷고), “내가 나를 다시 사랑할 수 있게 내가 나를 다시 느낄 수 있게 노래여 잠에서 깨라”(노래여 잠에서 깨라)고 외칠 땐 코끝이 찡했다. 들국화는 다음 달 새 앨범을 발표한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김광석. 이제 세상에 없는 그는 주크박스 뮤지컬 ‘그날들’로 돌아왔다. 김광석 음악의 정수를 제대로 살려내지 못한 아쉬움이 있지만 그런대로 서글픔과 회한의 정서를 담아냈다. 청와대 경호실을 배경으로 20년 전과 오늘을 오가며 사랑과 우정 등을 그렸다. 엔딩 부분 ‘사랑했지만’과 ‘흐린 가을 하늘에 편지를 써’가 흘러나올 때면 벅찬 감정이 치솟는다. 극 중 연인의 사랑이 슬퍼서이기도 하고, 무대를 채우는 김광석 노래를 다시는 그의 목소리로 들을 수 없다는 사실을 새삼 절감하면서다. 김광석 음악이란 단순히 가사와 멜로디가 아니라 그의 목소리로 완성되는 것이므로, 김광석 뮤지컬이 역으로 그의 부재를 환기시키는 아이러니다.

 제작사는 매회, 객석 한가운데 자리를 비우고 김광석의 사진과 꽃바구니를 놓았다. 젊은 팬들이 기념사진을 찍었다. 그가 자살로 짧은 삶을 마감할 때 꼬마였을 관객들이다.

 조용필은 1980년대 수퍼스타였다. 애조 띤 목소리로 서민을 위로하며, 십 수년간 주류 가요계를 제패했다. 들국화와 김광석은 ‘임을 위한 행진곡’이 지배하던 80년대 대학가에 핀 서정성의 꽃이었다. 그리고 30년, 이제는 모두 ‘가왕’ ‘전설’이 돼 불멸의 힘을 발하고 있다. 참으로 위대한 음악의 힘이다.

양성희 문화스포츠부문 차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