확 달라진 패션 ‘미스김’처럼 전투복 모드로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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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20호 21면

요즘 본방 사수하는 드라마를 꼽자면 단연 ‘직장의 신’이다. 800만 비정규직 시대에 자발적으로 계약직을 택하고, 124개라는 믿을 수 없는 숫자의 자격증을 소지하며, 점심시간과 오후 6시 이후 업무에 대해서는 단 1분이라도 시간 외 수당을 받아내는 ‘미스김(김혜수 분)’의 매력에 푹 빠졌기 때문이다. 더구나 매 회마다 쏟아지는 대사들 역시 촌철살인. 그중에서도 귀에 꽂힌 대사가 하나 있었다. “전쟁터에선 이 전투복 하나면 충분해.” 같이 쇼핑 가자고 조르는 후배에게 던진 그의 한마디였다.

스타일#: 윤진숙 장관의 변신

아닌 게 아니라 극 중 미스김의 출근복은 딱 두 벌이다. 단색과 가는 흰색 줄이 들어간 감색 바지 정장을 번갈아 입는데, 셔츠 역시 흰색과 파란색 두 벌뿐이다. 여기에 줄을 길게 늘인 사각 서류가방을 메고 신발은 굽이 높지만 발등이 보이는 펌프스가 아닌 줄을 매 조이는 레이스업 스타일을 고수한다. 게다가 헤어스타일 역시 천연기념물급. 사무실 바닥이 머리카락으로 지저분해질까, 업무 집중력에 지장을 줄까 싶어 80년대에서나 있었을 법한 그물망으로 묶어 둔다.

상상만 해도 촌스럽다 싶지만, 그래서 미스김이다. 이 차림새가 바로 고도의 전략을 지닌 커리어우먼 오피스룩의 전형이기 때문이다.

일단 그의 테일러드 재킷을 보라. 길이가 엉덩이를 반쯤 가려주면서 허리에 살짝 라인이 들어가면서 몸에 꼭 붙는 스타일이라 민첩하고 정확한 이미지를 심어준다. ‘나 능력 있는 여자야’라는 무언의 암시다. 자세히 보면 재킷의 소매는 항상 접혀져 손목을 드러내는데, 뭐든 적극적으로 나서 업무를 처리하겠다는 의지가 숨어 있다. 단추 한두 개를 풀어놓은 셔츠 역시 그냥 넘겨볼 게 아니다. 이는 일처리는완벽하지만 그렇다고 꽉 막힌 딸깍발이 서생이 아니라는 상징적 노출이랄까.

게다가 뭐니뭐니해도 미스김 패션의 압권은 롱 트렌치 코트다. 피로에 찌든 채 혹여나 지각할까 발걸음을 재촉하는 출근길 인파를 가르며 또각또각 구두 소리와 함께 등장하는 이 옷. 미스김은 발목까지 내려오는 코트를 입고 개선장군처럼 등장한다. 특히 바람이 휘날릴 때마다 시뻘건 안감이 그대로 드러나는데 그 카리스마가 마치 수퍼맨의 재림을 연상시킨다.

결국 미스김은 이겨야 하는 전쟁터에서 출근복을 자신의 능력과 위엄을 드러내는 갑옷으로 활용한다. ‘우정을 나누는 대신 생계를 나누고’ ‘몸 버리고 간 버리고 시간 버리는 (회식의) 테러 행위를 감수해야 하고’ ‘쓸데없는 책임감으로 오버했다간 자기 목만 날아가는’ 이 정글에서 출근복이란 스스로를 보호해 줄 무기가 돼야 한다는 얘기일 터다. 그러니 그의 패션을 보고 비록 멋쟁이라 부를 순 없어도 ‘일 하나는 똑 부러지게 하겠군’이란 생각이 든다.

최근 논란 끝에 임명된 윤진숙 해양수산부 장관을 보면서 미스김이 떠올랐다. 미스김처럼 정체가 불분명한 존재로 혜성처럼 등장했건만 미스김과 달리 전문성과 능력 검증에 있어서는 고된 신고식을 치른 그이기 때문이다. 흥미롭게도 그런 윤 장관이 여론의 뭇매와 야당의 비난을 풀 해법으로 패션을 골랐다. 22일 해수부의 첫 당정협의에서 과감하게 스타일을 변신시켰다. 금빛이 도는 갈색 원 버튼 재킷에 먹색 블라우스를 받쳐 입었고, 머리는 웨이브를 살린 단발로 정돈시켰다. 또 금테 대신 와인빛 뿔테 안경을 꼈고, 스카프도 둘렀다. 뭣보다 청문회 때 그를 가장 ‘아줌마스럽게’ 만들었던 빨간 립스틱을 지우고 눈매를 또렷이 하는 화장을 선보였다. ‘우리 장관이 달라졌어요’라는 어느 기사 제목처럼 품격 있고 세련된 여성 공직자의 포스를 노렸다면 나는 합격점이라 말하고 싶다.

이튿날도 비슷한 차림새를 이어간 걸 보면 아무래도 장관의 전투복은 그렇게 정해진 듯싶다. 다행히 그를 응원하는 여론도 조금씩 생겨나고 있다. 단, 장관이 기억할 건 하나다. 스타일의 약발은 딱 여기까지라는 것. 전쟁터에서도 그 능력이 발휘되지 못한다면 외모만 신경 쓴 꼼수라는 지적은 되레 더 거세질 터다. 우리 어업의 GDP 비율, 해양수도가 되기 위한 비전을 물을 때마다 모르겠다며 웃었던 그가 미스김처럼 말해주길 기대해본다. ‘제, 업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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