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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새 낙원' 천수만 거듭난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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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0면

서산간척지에서 벼농사를 짓는 이모(47·서산 부석면)씨는 지난해 수확을 늦게 하는 바람에 낭패를 봤다.10월께 날아온 큰기러기·청둥오리 등의 겨울 철새들이 낱알을 쪼아먹어 적잖은 피해를 본 것이다.

이처럼 동북아 최대 철새 도래지로 꼽히는 충남 서산 천수만 일대에 날아든 철새들은 농민들에겐 반가운 손님만은 아니었다.

그러나 올해부터 사정이 달라진다.이 지역에서 생물다양성 관리계약제도가 시행되기 때문이다.이 제도가 도입되면 농민들은 피해를 보상받고,철새들은 좀 더 아늑한 쉼터를 제공받을 것으로 보인다.

이 제도는 농민이 재배 중인 일부 지역의 곡물을 미리 사들여 추수하지 않고 철새 먹이로 제공하는 게 골자다.겨울 철새 도래에 앞서 추수를 끝낸 논에 철새 먹이용으로 보리·밀을 심게 한다.수확을 끝낸 논에는 물을 대,새들이 좋아하는 휴식공간으로 활용한다.이로 인한 수확 손실분 및 경비는 모두 국가·지자체에서 보전해 준다.

먹이용 벼 재배 농가는 계약금으로 10%를 먼저 받고 잔금 90%는 추수 때 지급한다.

관리계약 지역은 서산간척지 A지구 중심으로 1백여만평을 계획하고 있으며 농민 및 조류전문가와의 협의를 거쳐 대상지역을 최종 확정지을 방침이다.철새들이 많이 찾는 와룡·해미(도당)천 부근이 우선 포함될 전망이다.

이를 위해 다음달 운영위원회를 구성해 보전비 산정기준 등을 정하고 이르면 5월쯤 농민들과 생물다양성 관리계약을 체결할 계획이다.기간은 2012년까지 10년간으로 총 사업비 64억원이 투입된다.올해 사업비 6억4천만원 중 30%는 국비로,나머지는 해당 지자체서 부담한다.

충남도 관계자는 “이밖에 2007년까지 철새학습관·탐조대 등을 갖춘 ‘천수만생태공원’을 조성해 관광객들의 무분별한 탐조행위로 철새 서식 환경이 침해받지 않도록 할 방침”이라고 말했다.도와 서산시는 아직 일반 매각되지 않은 서산간척지 일부를 매입해 철새들의 안전한 번식처와 먹이 제공처인 버드 존(bird-zone)화한다는 계획을 세우고 있다.

한편 생물다양성 관리계약은 올해 천수만과 함께 전북 김제(만경·동진강)서도 시행된다.지난해 전남 해남(영암호),전북 군산(금강호),경남 창원(주남저수지)등 3곳에서 시행되어 큰 효과를 거뒀다.

또 시민·환경단체 회원으로 구성한 밀렵감시단이 연중 활동하고 간척지에 드나드는 일반 차량 출입은 철새 도래 기간 동안 제한할 계획이다.

◇줄고 있는 천수만 철새=천수만에는 겨울을 나기 위해 남하하는 오리·기러기류 및 황새·노랑부리 저어새 등과 여름철새인 호사도요·장다리물떼새 등 모두 1백여종 50여만 마리가 찾아든다.그러나 2000년부터 개체수가 매년 10% 정도씩 줄고 있다.특히 멸종위기 종인 가창오리는 전세계 개체수의 90% 이상이 이곳을 찾았으나 최근 급격히 줄고 있다.

철새 감소의 주된 이유는 현대측이 농지를 일반 매각함에 따라 개별 영농이 본격화되면서 농기계 및 각종 차량 출입이 잦아진 데 있다.농민들은 많은 벼수확을 위해 농약 사용을 늘리는 바람에 철새들이 좋아하는 미꾸라지 등 각종 수생 동물과 곤충류이 크게 줄었다.게다가 농민들의 알뜰한 수확으로 떨어진 낱알이 적어졌다.현대영농사업소가 비행기로 볍씨를 뿌리며 대형 콤바인으로 수확하는 대단위 영농시절과는 상황이 달라진 것이다.

게다가 서산 간척지로 진입하는 통로들의 통제가 모두 풀려 관광객들 출입까지 자유로워졌다.밀렵꾼들 활동까지 눈에 띄게 늘었다.천수만 일대가 더이상 조용하고 편안한 철새들의 안식처로 불가능해 진 것이다.

조류전문가 김현태(35·만리포고 교사)씨는 “철새들이 기억력은 일반인의 상식 수준 이상이다.편치 않았던 지난번 경험으로 천수만을 지나쳐 금강하구 등 더 남쪽으로 내려가는 것 같다”고 말했다.

서산=조한필 기자
사진=안성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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