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라크전' 둘로 갈라진 EU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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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6면

유럽이 이라크 전쟁을 둘러싸고 적나라하게 드러난 분열상의 충격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유럽연합(EU) 의장국인 그리스는 물론 프랑스.독일 등은 영국을 비롯한 유럽 8개국이 지난달 30일 일방적으로 대(對)이라크 전쟁을 지지하는 선언을 한데 놀라움을 금치 못하는 표정들이다.

영국과 이탈리아.스페인.포르투갈.덴마크 등 EU 5개 회원국과 폴란드.체코.헝가리 등 EU 가입예정 3개국 정상들은 공개서한을 통해 "이라크 무장해제를 위한 미국의 노력에 유럽이 적극 동참할 것"을 촉구했다.

공동 외교정책 확립이라는 EU의 지상목표에도 불구하고 과거 회원국들이 제각각 다른 목소리를 낸 적은 많지만 EU가 이처럼 극명하게 양분된 상황은 거의 없던 일이다. 프랑스의 좌파 일간지 리베라시옹이 "이라크에 대한 공격의 첫번째 희생자는 유럽"이라고 개탄했을 정도다.

전쟁에 대한 반대여론이 유럽에서 가장 높음(74%)에도 불구하고 선언에 참여한 스페인의 중도좌파 신문 엘 파이스도 "통일된 외교정책 수립을 포기하는 수치스런 행동으로 EU를 위험에 빠뜨렸다"고 자국 정부를 비난했다.

EU 집행위원회는 8개국의 공동선언의 의미를 애써 축소하면서 사태 수습에 진력하고 있다. 로마노 프로디 집행위원장은 "공개서한 내용은 8개국의 사견일 뿐 EU의 정책은 아니다"고 강조했다.

EU 의회도 공동선언 발표 직후 미국의 일방적인 이라크 공격을 반대하는 결의문을 채택했다.

의회는 2백87대 2백9표로 통과시킨 결의문에서 "이라크 공격은 국제법 및 유엔헌장에 어긋나며 지역 내 다른 국가들을 개입시키는 심각한 위기를 초래할 것"이라고 경고했다.

파리=이훈범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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