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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류여심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5면

신촌에 계신 아저씨로부터 전갈이 왔다. 이력서와 사진을 가져오라는 것이다. 직장생활 3, 4년에 아직 직장에 대해 만족하다고는 느껴보지 못했지만 그렇다고 별로 싫증을 느껴보지도 못했던 것 같다. 그래서인지 아직 누구에게 직장에 대한 부탁을 했던 기억이 없다. 그런 나에게 이력서와 사진을 필요로 한다는 아저씨의 전갈은 실로 으아하기만 했다.
○…며칠 후의 일이다. 직장을 마치고 퇴근길에 아저씨 댁을 들렀다.
조금은 기대 같은 것을 걸고…. 그러나 아저씨의 이야기를 듣고 나는 어처구니가 없었다. 모처럼 훌륭한 규수가 있는데 우선 서류전형의 중매를 하시겠다는 것이다. 조건은 일류대학을 나오고 병역을 필했으며 좋은 직장을 가진 단정한 남자로서 우선 이력서와 사진으로 선택된 후 맞선을 보겠다는 것이다.
○…인간의 진실이 무엇이기 전에 인간의 참된 애정이 무엇이기 전에 일류만을 찾는 여성의 삼류적 인간 차원, 여기서 가벼운 혐오 같은 것을 느꼈다. 일류를 가진 몇 줄의 이력서와 현대를 사는 파리한 인간영상의 「스냅」 한 장이 배우자 선택의 선행조건이 된다면 지극히 서글픈 우리네 풍속이다. <김일수 남·28·회사원·서울 동대문 사서함 8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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