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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기와 교훈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1면

구봉광산 지하1백25미터의 갱도속에 파묻힌 김창선씨의 가물가물 하는 생명은 상상조차 고통스럽다. 그는 9일간이나 절망과 희망의 틈바구니에서 생명의 실오리를 쥐고 있다. 갱목조각과 작업복을 씹어 먹는 굶주림의 상황을 우리는 도저히 실감할수 없다.
『내가 죽으면 광산에서 나오는 보상금을 논을 사든지…그리고 자식들은 끝까지 공부시키도록 하라. 인감도장은 내가 가지고 있다.』
1초, 1초 절망의 그늘이 다가서는 것일까. 사고후 8일을 견딘 끝에 그는 전화로 유언까지 했다. 『자식들은 끝까지…』하는 인자한 아버지의 면모는 눈물겹다. 그것은 인간의 본능적인 미덕이다. 극한 상황속에서도 한 아버지는 다음 세대를 생각하는 것이다. 아니 그것은 동양의 미덕이다. 한국인의 깊은 바탕은 이처럼 숭고한 인간애와 도덕감으로 이루어진 것이 아닐까. 우리는 이름없는 범부의 절망속에서도 높은 민족의 긍지를 발견할수 있다.
그런 사람들이 우리사회에는 얼마든지 있다. 그들은 구석구석에서 수굿이 일을 하고 있다. 구봉광산의 경우는, 그러나 우리의 사회구조에 얼마나 많은 함정이 잠복하고있는가를 고발해준다. 죽음의 그림자가 노상 뒤를 따라 다니는 광산같은곳에 안전시설하나 제대로 마련하지 못한 것은 한 사례의 노출에 불과하다. 더구나 산업발전의 급급한 과정속에서 한 인간을 도구로 전락시키는 일은 없겠는가. 도대체 사회의 발전이란 무엇인가?
김창선씨를 구출하느냐 죽이느냐는 우리사회의 문화의식을 판정해줄 것이다. 문화는 인간생명의 존중에서 시작되고 꽃핀다.
김씨의 생명은 지금 6미터 가까이로 다가왔다. 구조작업은 한순간도 쉼없이 더 힘차게 진척되어야 한다.
김씨의 구출은 우리 모든 사람에게 절망하지 않고 세상을 살 수 있는 용기를 줄 것이다. 그리고 부도덕한 산업자들에게는 깊은 반성의 교훈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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