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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사람의 목숨이라도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2면

지금 충남 구봉진 산에서는 1백 시간이 가깝도록 갱내에 갇힌 한 광부가 애타게 생명의 구원을 외치고 있다. 수직갱도 붕괴로 지하 1백25미터의 대피소에서 외부세계와 완전히 차단되어버린 이 광부의 처절한 외침은 우리 귀에 막 들려오는 듯하다. 가슴이 뭉클해지는 처참한 사건이다.
구조본부는 25일에도 구조작업에 실패함으로써 이 광부는 아마도 2주일 후에나 햇볕을 보게 될 것이라 한다. 지하수만으로 연명해온 이 광부는 전화를 통해 『난 이대로 죽을 수 없어』하는 말을 부인에게 전했다 하거니와 한기와 기아 속에서 고투하는 그의 모습이 눈에 선하다. 물론 생명의 위협과 맞서 사력을 다하여 고투하고 있는 이 광부의 소식은 이를 전해듣는 모든 사람의 가슴을 아프게 한다.
그러면 그는 왜 그토록 처절한 지경에 놓이게 되었던가. 혹자는 불가항력의 우발적 사고였다고도 할 것이다. 그러나 우리가 보기에는 기왕에 있었던 이루 헤아릴 수 없이 많았던 동류의 사고나 참사사건의 경험으로 비추어볼 때, 그것을 우발적 사고로만 볼 수는 없을 것 같다.
갱내사고는 대개가 순식간에 일어나는 것이기 때문에 사고에 방책이 사전에 충분히 강구되어 있지 못하면 인간의 생명을 무수하게 앗아가는 이런 사고는 도저히 막을 도리가 없다. 다시 말하면 안전관리가 지나치도록 까지 되어 있지 못하면 사고는 불의 불시에 일어날 것이며 또 그 사고는 기어이 인명을 앗아가게 마련인 것이다.
따라서 광업소 경영주의 입장에서 본다면 얼핏 우원하고 불필요하고 방대한 돈이 소요되는 안전관리시설을 지나치도록 까지 사전에 맞추어놓고 있기가 현실적으로 대단히 어려운 일일지 모르나 그것이 인명과 직결된 성질의 것인 이상 그 책무를 소홀히 해서는 안될 것이다. 우리의 실정에 잠깐 눈을 돌려보자. 우리의 광부는 어떤 조건아래서 작업하고 있는가.
적어도 우리가 알기로는 대부분의 광산은 그 안전시설이 엉망인줄 안다. 공기가 혼탁하느니 뭐니 하는 것은 그래도 약과일 것이고, 도대체 인명을 지키는 대비조차 신통치 않은 것이 숨길 수 없는 현실일 것이다. 광산에선 으례 사람이 죽는 것 광산노동은 극도로 위험한 것 하는 등의 전시대적인 관념이 그대로 지배하는 사회가 바로 그 사회인 듯하다.
당치도 않은 관념이다. 어째서 광산에서만은 사람이 죽어 가는 것을 상식으로 돌린단 말인가. 위험이 없고 사람이 죽지 않는 광산을 만들려는 노력은 왜 외면돼야 한단 말인가.
근원적으로 따져 들어가면 이러한 인명경시의 바탕은 다른 일반적인 사회의 그것에서 많이 영향받았다 할 수 있을 것이다.
사실 우리 주변에서처럼 사람의 목숨을 알기를 파리목숨처럼 아는 곳이 어디 또 있다 할 수 있을 것인가. 이제는 그것이 거칠었던 전쟁의 여독이었다는 변명을 하기조차 쑥스럽다. 실제행동에서 혹은 사람들의 불 용의하고 무책임한 발언에서 인명경시의 풍조가 말끔히 사라지지 않는 한 우리는 인간의 존엄성을 구가할 수도 없겠거니와 민주주의의 승리를 기대할 수도 없을 것이다.
남의 목숨을 자기 목숨과 같이 아끼고 사랑해보자. 그리고 지금 땅속 깊은 곳에서 사력을 다하여 구원의 손길을 기다리고 있는 그 광부의 입장에 각자가 서보자. 그러면 거기서 스스로 인간생명의 존엄성을 지키는 해답이 얻어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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