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시론

우리 모두가 예비 장애인이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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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3면

최병호
한국보건사회연구원장

한 인터넷 카페에 올라 있는 내용이다. “우리 반에 15살인데 5살 지능에 멈춰 있는 앤데… 애들이 막 괴롭혀서 자꾸 미안하고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어… 학년 초는 진짜 짜증이 났는데 시간이 조금 지나니까 좀 괜찮은 거야. 그래도 걔는 특수학교로 가야 할 것 같아. 역시 짜증 나거든.” 이는 어느 중학생의 장애인에 대한 인식 정도를 보여준다. 이러한 편견은 어릴 때부터 알게 모르게 주입된 결과이고, 우리 사회의 책임일 것이다.

 2011년 장애인 실태조사(보건복지부)에 나타난 장애인은 268만 명이다. 2005년 똑같은 조사 때의 214만 명보다 54만 명이 늘었다. 불과 5년 사이에 포항시 인구 51만 명보다 많은 장애인이 늘어난 셈이다. 장애인 출현율을 살펴보면 2005년 전체 인구 중 4.59%였으나 2011년 5.61%로 증가했다. 장애인 출현율의 증가는 선천적 장애보다는 질병 사고로 인한 후천적 장애가 늘었기 때문이다. 2005~2011년간 선천적 장애는 11.0%에서 9.5%로 줄어든 반면 후천적 장애는 89.0%에서 90.5%로 증가했다. 장애 발생의 90% 이상이 후천적 원인임을 감안할 때 현재 대부분의 장애인들은 인생의 어느 지점까지는 장애를 갖지 않고 살았던 비장애인이었다는 얘기가 된다. 그런 의미에서 비장애인은 ‘예비 장애인’이다. 우리 사회에 만연해 있는 장애인에 대한 차별적 인식은 어느 날 ‘내가 감수해야 할 차별의 문제’로 고뇌할 수 있는 것이다. 차별이란 인간으로서 마땅히 누리고 행사하는 기본적인 자유와 권리를 제한하는 행태인데, 장애인에 대한 우리 사회의 차별은 그 정도가 심하다. 장애인에 대한 차별은 장애인이 갖는 특성에서 비롯되기보다는 우리 사회가 장애인을 바라보는 편견이나 사회의 집단적인 따돌림에서 기인하는 경우가 많다.

 2006년 유엔은 장애인의 존엄성과 권리, 평등이 실현되는 사회를 위해 장애인권리협약(CRPD)을 채택했다. 2008년 우리 정부도 모든 생활영역에서 장애를 이유로 한 차별을 금지하고 장애인의 평등권 실현을 통해 인간으로서의 존엄과 가치를 구현함을 목적으로 ‘장애인차별금지 및 권리구제 등에 관한 법률’을 통과시켰다. 하지만 장애인차별금지법이 제정된 지 5년이 지난 지금 장애인 차별 문제는 여전히 해소된 것이 없다. 2011년 장애인실태조사에 따르면 80.7%의 장애인이 “우리 사회에 장애에 대한 차별이 많다”고 응답하고 있다.

 미국은 2010년 7월 26일 장애인법 제정 20주년을 기념해 장애인의 TV 방송과 휴대전화에서의 장애인 접근권을 보장하기 위한 ‘21세기 방송통신접근법’을 추가로 제정했다. 이 법을 통해 휴대전화(아이폰)의 설정기능에 ‘손쉬운 사용’이라는 메뉴를 만들어 방송통신접근에 어려움을 가지고 있는 그들이 자신의 상황에 맞도록 화면 조정과 음성지원 서비스를 받을 수 있게 해 TV방송과 휴대전화에 대한 접근성을 획기적으로 향상시켰다. 장애인의 상황을 고려한 평등을 실현하는 평등의 길을 마련하고 있다.

 우리 사회는 복지후진국이라는 미국에 비해서도 장애인에 대한 배려와 관심이 한참 떨어져 있다. 어느 중학생의 인터넷 글에서 보듯 어려서부터 장애인에 대한 편견과 차별을 개선하지 않으면 안 된다. 장애인에 대한 이해도를 높이는 커리큘럼을 개발해 어려서부터 장애인에 대한 이해도가 자연스럽게 스며들 수 있도록 교육할 필요가 있다. 직장 역시 장애인 동료에 대한 인식 개선 프로그램을 만들어 그들과 늘 동반자로 동행하는 여건을 만들어야 한다. 사실 장애인 차별을 해소하는 사회의 노력이 지난하고 지루한 과정이지만 우리 사회가 장애인에 대한 벽을 허무는 것이 국민행복시대를 열어가는 길이다.

최병호 한국보건사회연구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