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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천과 평등의 사회|미국 대학생과 가족생활|귀국한 이대 홍복유 교수의 이야기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5면

지난 1월 「아시아」 문화소개를 위한 「풀브라이트」 초청교수로 도미했던 홍복유 교수(이대영문학)가 19일 귀국했다. 그동안 홍 교수는 「뉴요크」 주립대학 중 「바팔로」 대학을 비롯한 7개 대학과 「미주리」 대학에서 한국의 지리·역사·종교·예술·정치·경제·사회 등 한국문화 전반에 걸친 소개와 비교영문학을 강의했다. 56년 교환교수로 도미했었고 64년 영국 「케임브리지」 대학에서 1년간 영문학을 연구한 후 귀국도중 미국에 들른 바 있는 홍 교수는 미국 대학생들과 차분하고 열성적으로 이야기를 나눌 수 있은 것은 얻기 힘든 소득이었다고 말했다.
각국 에서온 「풀브라이트」 초청교수 80명중 부부교수(부군 신태환 교수는 6월에 귀국)가 초청 받기는 한국 뿐으로, 다음은 홍 교수가 말하는 최근 미국의 대학생과 가족생활에 대한 얘기다.
미국의 「아시아」 연구는 이미 상당한 발전을 보고 있는데 한국연구는 이제 착수하는 단계였다.
그리고 다른 나라 대사관에서는 학생들이나 학교당국의 의뢰를 받으면 친절하고 자세한 자료를 알려주는데 한국대사관에서는 대답조차 없다는 불평을 여러 학교와 학생들에게서 듣기도 했다. 되도록 내용 있는 최신 것을 소개할 수 있게 대책을 세우고 한국에서 한국연구를 제대로 해야겠다는 것을 강조하고 싶다. 한국연구는 그래도 한국에서의 연구가 원천이 되어야겠기 때문이다.
외국에서 돌아오면 항상 그곳의 여자대학생이니 여성학자들이 어떠냐는 식의 질문을 받는데 공부하는 학생이나 학자들에게 학문적으로 대할 때 남녀의 구별을 느낄 수 없었다.
그들은 똑같은 입장에서 경쟁하고 노력하기 때문이다.
미국 대학생들의 정치의식은 적극적이었다. 행정부에 대한 비판, 특히 월남전에 대한 것은 신랄한 편이었다. 반전 「데모」가 상당했다. 물론 지지하는 학생 「데모」도 많았다. 한가지 내가 놀란 것은 이러한 열렬하고 노골적인 비판이나 「데모」에 대해서 학교 당국과 정부가 아무런 제지나 통제를 가하는 일이 없는 점이었다. 그들은 자유롭게 논쟁하고 의사표시를 하는 동안에 그들대로의 결론을 얻고 문제를 터득하는 모양이었다. 그래서 그들의 논쟁과 행동은 순수하다고 볼 수 있다. 한국의 파월 장병에 대해서는 학생 뿐아니라 각계각층에서 다같이 고맙게 여기고 융숭한 대접을 하는 것같더니 부정선거가 보도되자 빈정거리는 식으로 질문해 오는데는 곤란을 겪기도 했다.
많은 학생들이 당신 가정에서는 가장제도가 엄격해서 아이들이 아버지 말을 잘 듣느냐는 질문을 했다. 옛날에는 그랬는데 지금은 잘 듣지 않는다는 내 대답에 학생들은 섭섭한 표정을 지으며 정말 안됐다는 것이었다.
그들은 동양적인 가족제도를 동경하고 어떤 의미로는 그들 자신이 동양사람보다 더 긴밀하게 결속된 생활을 하고 있는 셈이었다. 우리는 행동보다 관념적인 면이 농후한데 비해 그들은 부부와 아이들을 중심으로한 핵가족제도지만 친척끼리 더 자주 찾아보는 등 실천하는 생활방식이다. 부부간에 떨어져 있을 경우 전화와 편지, 그밖의 여러 방법으로 긴밀한 연락을 취하는 것이라든지 자녀들이 부모에게 그들의 행방과 밖에서의 생활을 일일이 얘기하는 등 그들의 가족의식은 우리보다 더 강한 편이라 말할 수 있다.
자녀교육도 엄격하다. 우리가 생각하기 쉬운 자유방임주의가 아니다. 영국과 불란서보다 청교도적인 정신이 바탕이 된 때문인지 모른다. 어린애의 훈련은 어릴수록 효과적이라는 것을 어머니들은 알고 있다. 남녀학교 기숙사에는 서로 갈 수 없다. 이 점이 영국과 다른 점이다. 「텔리비젼」을 두지 않은 가정도 많았다. 아이들 교육에 나쁜 영향을 끼치기 때문이라고 어머니들은 설명했다. 워낙 땅이 넓고 여러 곳에서 몰려와 사는 나라여서 일괄적으로 말하기는 어렵지만 그들은 결속된 가족생활과 엄격한 자녀교육에 힘쓰고 있는 것만은 사실이다. 미국이 동양에 대한 지식과 동양의 좋은 점을 받아들이려고 하는 것은 오래된 얘기다.
이번 동남아 각국에서 자기 나라를 충분히 얘기할 수 있는 80명의 교수를 초청, 미국 전역대학에서 강의하도록 한 계획은 구체적인 것을 파고들어 정신적인 이해증진을 위한 것이라 생각한다. 이러한 국가정책은 젊은 학생들의 열성적인 동양에 대한 호기심과 지식추구에 호응하는 대책으로 느껴지기도 했다. 학생들은 끊임없는 질문을 퍼부어 왔고 그것은 한국학생이 한국을 알려는 열성에 비할 바가 못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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