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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월의 문단 시 - 신동화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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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15일은 강산이 분단된 지 만22년이 되는 날이다. 분단되기 전 30여 년간 서울의 상가는 일본어 간판으로 장식되어 있었다. 분단 후 오늘까지 22년간 서울의 상품은 「알파벳」으로 장식되어 팔리고 있다. 해방 전 한국의 시인들은 행이었을까 불행이었을까. 식민지 백성임을 자각하면서 살았다.
그들은 일본사람들과 싸우다 투옥되었거나 산간벽지로 유랑하면서 풍월을 노래했거나 아니면 주어진 상황에 안일하면서 비지 먹은 돼지처럼 국민가요나 작사하고 있었다.
오늘 우리들은 백「달러」밖에 안 되는 국민소득 주머니로 국민소득 4천5백「달러」인 미국사람들과 똑같은 양복 똑같은 구두 똑같은 「텔리비젼·프로」를 즐기려 눈물겹게 안간힘하고 있다.
우리 시인들은 조국의 위치에 대한 상황의식 없이 마치 홍수에 떠가는 거품처럼 맹목기능자가 되어 사치스런 언어의 유희만 흉내내고 있다.
원조물자 위에 세워진 소비성문화. 영문학 숭상의 비평가나 시인들은 지난 22년간의 기회 있을 때마다 모든 지면을 총동원하여 구미식 잣대로 한국문학을 재단하려 했었다.
영국의 아무개 시인, 「프랑스」의 아무개 비평가, 미국의 아무개씨 등의 글 귀절을 들을 신주 모시듯이 인용하였다.
그들의 공이었을까, 오늘 한국시의 불모는.
「성프란시스」「미켈란젤로」「릴케」……. 이 달에 발표된 어느 시인의 20행도 안 되는 작품에서 추려본 어휘들이다.
뿌리는 어디 갔을까. 미사여구는 나불거리는 혀만 남고.
조유경씨의 「신 농부가」<신동아>를 익으면 그런 대로 이 달엔 농촌에 눈을 돌리려는 시인이 있음을 발견하고 기뻐진다.
오늘의 우리 시들은 어쩌면 그렇게 한결같이 도시적이고 소비적이고 장식품용 스럽고 응용미술 아니면 「재즈」음악인가.
인간의 원초적인 시정신은 어디 갔을까. 인간의 처음이자 마지막인 그 혜안은 어디 갔을까.
그 「말씀」은, 그 반도의 슬기는, 그 반도의 가슴은 어디 갔을까. 그 반도의 배짱은 어디 갔을까.
22년간 원조물자의 범람 때문에 진정한 시인의 뿌리 내릴 토양은 멀리 차단되고 있었단 말일까.
다방이나 대학연구실이나 중앙도시의 「빌딩」만이 우리 조국의 현실일수는 없다. 총인구 가운데 7할을 차지하고있는 굶주리고 헐벗고 학대받고있는 농…어촌은 그럼 누구의 현실이란 말인가.
위대한 시인은 위대한 시대가 만들어 놓는다.
22년간의 원조물자와 언어세공업자들의 맹목적인 노력의 퇴비를 밑바닥에 충분히 썩혀서 자양분으로 흡수할 수 있는 자만이 다음날 위대한 정신인의 영광을 차지할 수 있으리라.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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